[섬싱스페셜] 김시진 감독의 ‘야구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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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7일 07시 00분


김시진 감독. 스포츠동아DB
김시진 감독. 스포츠동아DB
“야구를 잘하려면…연필로 쓰세요”

전력분석 통한 데이터 있지만…
스스로 메모해야 플레이 객관화
‘복기’ 효과로 잘못된 부분 깨달아


인간은 망각의 동물. 언젠가 생각해 냈던 그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떠오르지 않을 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래서 이하윤은 수필 ‘메모광’에서 ‘메모는 뇌수(腦髓)의 분실(分室)’이라고까지 표현한다. 넥센 김시진 감독은 야구에서도 메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프로의 자세는 ‘메모광’


전력분석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각 팀은 상대투수와 타자들에 대한 데이터를 축적해 둔다. 선수들은 필요에 따라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전력분석회의도 한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과 자신이 “직접 정리를 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이 김 감독의 생각이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글을 쓴다는 행위는 자신을 객관화 시키는 과정이다. 범타로 물러났을 때, 상대타자로부터 결정타를 맞을 때, 실패의 지점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은 이후 승부의 밑거름이 된다. 그 시간만큼은 철저히 외로운 숙고(熟考)를 거듭하기 때문.

김 감독은 강병식(33)을 예로 들었다. 강병식은 대학시절 국가대표로 활약한 강타자였지만, 프로입단 이후에는 막강한 현대타선에서 주로 대타요원으로 활약했다. 김 감독은 “승부처에서 나가는 타자이기 때문에 상대투수들에 대한 정보를 메모할 것을 더 강조했다. 그것이 프로의 자세”라고 했다.

비단 야구 뿐 만이 아니다. 2008베이징올림픽 펜싱 여자플뢰레 은메달리스트 남현희(29·성남시청) 등 아마추어의 거물급 선수들도 “학창시절부터 경기들을 스스로 정리했다”고 증언한다. 일기형식의 훈련일지는 올림픽메달리스트들의 피와 땀을 증명하는 주요 레퍼토리다.

○A급 투수라면 110개의 투구를 모두 복기해야

메모는 특히 ‘복기’라는 지점에서 더 효과가 크다. 김 감독은 “잘 던지는 투수들은 110개의 투구를 거의 모두 복기할 수 있다”고 했다. 모든 투구가 일종의 ‘목적의식’ 속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바둑에서 프로기사들이 자신의 경기를 ‘한 수, 한 수’ 모두 기억하는 것과 같다.

넥센 투수들 가운데는 올 시즌 팀의 주축으로 성장한 김성태(28)가 메모에 일가견이 있다. 복기를 통해 주자상황별 승부 포인트까지 정리한 오답노트는 그의 자산. 김성태의 올 시즌 연봉은 2800만원에 불과하지만, 연봉 인상요인이 충분한 선수다. “결국 메모가 곧 돈이 된다”는 김 감독의 설명이 과장은 아닌 셈이다.

전영희 기자 setup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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