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승천국-연패지옥? 스트레스는 동급!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이기면 누구나 좋아한다. 지면 다들 싫어한다. 여러 번을 내리 이기면 큰 박수를 받는다. 수십 번을 연달아 지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스포츠도 인간사와 마찬가지다. 연승 팀은 분위기를 이어가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니다. 연패 팀은 바닥을 치고 나오려 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신한은행은 16일 여자 프로농구 최다 연승 타이 기록을 세웠다. KEPCO45는 프로배구 남자부 최다 연패 기록을 경기마다 갈아 치우고 있다. 승리의 짜릿함과 패배의 괴로움. 하지만 스포츠의 세계에선 져도 박수와 격려를 받는 경우가 있다. 연승과 연패의 미학을 그려본다.》

▼“연승 깨질까봐 같은 넥타이 한달째”▼

WKBL 신한은행 15연승 타이… 상승세 꺾일라 ‘조마조마’

부담 시달리고 자만심 커져 약체팀에 의외의 패배 많아


“왜 내 넥타이 안 매니?”

여자 프로농구 신한은행 위성우 코치는 임달식 감독한테 이런 얘기를 자주 듣는다. 변변한 넥타이가 없어 평소 감독에게 빌려 매고 코트에 나서던 위 코치가 한 달 넘도록 후줄근한 자기 넥타이만 매고 있어서다.

위 코치는 “감독님께 말씀은 안 드렸는데…. 팀이 연승 중이라 작은 변화도 주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신한은행 센터 강영숙은 경기에 앞서 늘 영양제를 챙겨 먹는다. 역대 최다 타이인 15연승을 달성한 뒤 신기록을 넘보는 신한은행처럼 연승을 하고 있는 팀은 행여 상승세가 꺾일까 봐 버릇처럼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 프로농구 최다 연승 기록은 2004∼2005시즌 SBS의 15연승이다. SBS는 새로 가세한 단테 존스를 앞세워 시즌 막판 종전 기록이던 11연승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당시 김동광 SBS 감독(한국농구연맹 경기이사)은 “하도 붉은색 넥타이만 매다 보니 땀에 절어 냄새가 진동했다”며 웃었다.

그렇다고 연승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대기록에 대한 부담감에 시달리다 경기력 저하로 연결되기도 한다.

지난해 아마 농구 최다인 52연승을 세웠던 중앙대 김상준 감독은 “이겨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심했다. 선수들도 자만심이 커진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연승 행진은 의외로 약체 팀에 깨질 때가 많다.

프로농구 SBS는 16연승을 노리다 당시 최하위였던 LG에 덜미를 잡혔다. 프로야구 삼성은 1986년 김시진 이만수 등 호화 멤버를 가동해 16연승을 달성한 뒤 하위권의 청보에 패해 17연승에 실패했다.

배드민턴 혼합 복식 김동문-나경민 조는 국제대회 70연승을 합작했지만 정작 2000년 시드니,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잇따라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김동광 이사는 “연승에 매달리다 보면 이기려고 주전들을 혹사시킬 수도 있다. 물론 연패가 훨씬 괴롭지만 언젠가 깨지기 마련인 연승도 무조건 긍정적이진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전설의 골퍼 바이런 넬슨이 1945년 세운 11개 대회 연속 우승과 미국프로농구 LA 레이커스가 1972년 수립한 33연승은 좀처럼 깨지기 힘든 대기록으로 여겨진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연패한 날 반찬은 다음날 손도 안대”▼

프로배구 KEPCO45 27연패 수렁… 결국 공정배 감독 경질

국내 최다 ‘199연패’ 서울대 야구팀은 스포트라이트 받기도


프로배구 KEPCO45의 공정배 감독은 올 시즌 1승도 거두지 못하자 “패배의 책임은 내가 지겠다”고 했다. KEPCO45는 25연패에 빠졌다. 지난 시즌까지 포함하면 27연패다. 공 감독은 18일 경질 통보를 받았다. 감독을 맡은 지 12년 만이다.

프로 스포츠에서 연패는 ‘독(毒)’이다. 쌓이면 견뎌낼 장사가 없다.

지난해 북미프로미식축구리그에서 사상 처음으로 한 시즌 16경기를 모두 진 디트로이트 로드 마리넬리 감독은 시즌 직후 해임됐다.

국내 프로 스포츠 최다 연패 기록은 프로농구 오리온스가 1998∼1999시즌에 당한 32연패. 당시 구단 직원들은 대구 팔공산 갓바위에 올라 108배를 올리며 연패 탈출을 기원했다.

첫 승에 목말랐던 공 감독도 ‘파이팅’이라는 노래를 휴대전화 컬러링에 등록하며 연패 탈출을 원했지만 뜻을 이루지는 못했다.

프로야구 SK 김성근 감독은 연패한 날 먹은 반찬은 다음 날 손도 대지 않는다.

승리보다 패배가 압도적으로 많은 만년 꼴찌 팀은 외롭다. 응원하는 관중도 줄어든다. 하지만 이들이 승리를 챙겼을 때는 1등 못지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국 스포츠 최다 연패 기록(199연패)을 갖고 있는 서울대 야구부가 대표적이다.

서울대는 2004년 대학야구 추계리그에서 송원대를 꺾고 연패의 사슬을 끊었다. 순수 아마추어 학생들로 구성된 서울대가 야구에만 매달리는 다른 대학 팀을 이긴 것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프로야구 최다 연패(18연패·1985년) 기록을 갖고 있는 삼미는 당시 팬들로부터 인천 야구의 자존심을 갉아먹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삼미는 20여 년이 흐른 요즘 문화 상품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소설가 박민규 씨는 200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라는 책에서 삼미의 승률을 빗대 “1할2푼5리의 승률로 세상을 살아가는 모두에게 (바친다)”라고 했다. 이 책을 원작으로 한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2004년)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패자는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최선을 다하는 패자에게는 박수가 뒤따른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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