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최초 한국챔피언 기무라의 꿈

  • 입력 2008년 10월 21일 15시 52분


기무라 하야토. 동아일보 자료사진
기무라 하야토.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난해 크리스마스에 링 위에서 쓰러졌던 고 최요삼 선수의 추모대회가 11일 경남 마산 실내체육관에서 열렸다.

이 경기에서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달고 뛴 선수가 챔피언에 올랐다. 일본인 기무라 하야토(19·한국명 유빅·빅스타체육관).

기무라는 이날 인도네시아의 리틀 로즈만을 3회 KO승으로 꺾고 WBO 인터컨티넨탈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에 올랐다. 인터컨티넨탈은 일종의 동양챔피언이다.

기무라의 사연은 특이하다. 기무라는 일본인 최초의 한국 챔피언이다. 한국 복싱 사상 일본 국적의 선수가 한국 챔피언이 된 것은 전례가 없었다.

그는 이로 인해 일본인이면서도 한국복싱의 자존심이 되었다. 지난해 12월 그가 한국챔피언에 오르자 일본 복싱팬들이 “왜 일본을 놔두고 한국에 가서 권투를 하느냐”는 등 비아냥섞인 반응을 보였다. 이에 기무라는 일본 도쿄 고라쿠엔 경기장으로 원정을 떠나 일본 선수를 4회 KO로 눕히고 돌아왔다. 한국챔피언으로서의 실력을 보여 준 기무라는 “나는 한국챔피언이다. 일본 챔피언벨트는 이제 필요 없다. 일본 챔피언벨트는 또 하나의 국내 챔피언벨트이기 때문이다. 내 목표는 세계챔피언일 뿐이다”고 말했다.

최요삼 추모대회를 개최했던 고 최요삼씨의 친동생 최경호씨는 “기무라의 경기를 보고 WBO 아시아 퍼시픽 회장인 레온 파엔솔(미국)이 크게 칭찬했다. 기무라는 현재 한국 복싱의 핫 이슈다. 세계챔피언에 가장 근접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그의 전적은 12전 전승, 8KO. 화려한 기술로 승승장구하는 모습에 이제는 일본에서도 팬들이 늘었고 마산에서 열렸던 이번 타이틀매치에는 수십명의 일본 팬들이 한국에 원정 응원을 오기도 했다. 그 일본 팬들 앞에서 그는 링 위에서 당당히 애국가를 불렀다.


▲ 영상취재 : 신세기 동아닷컴 기자

그런데 그는 왜 한국챔피언이 됐을까. 외국 국적의 선수들도 한국챔피언에 도전할 수 있다. 그는 외국인으로서는 역대 4번째 한국 챔피언이다.

일본 요코하마 출신인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복싱선수가 되기로 일찍 마음을 굳혔다. 일본은 17세 미만의 선수가 프로 선수가 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요코하마에서 그를 지도했던 히라노 도시오 사쿠라체육관 회장은 이때 한국의 유연수 빅스타 관장에게 전화를 했다. 유망한 선수가 일찍 프로 선수로 활동하는 것을 돕기 위해 자신이 믿고 맡길 수 있는 한국 복싱인을 찾은 것이다. 유 관장은 기무라를 기꺼이 맡아 지도했다. 그리고 자신의 성을 따서 한국명 ‘유빅’이라는 이름도 지어주었다.

유관장은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해 크게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혈혈 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히라노씨를 찾아가 도움을 청했고 히라노씨는 이런 유관장을 보살펴 주었다. 몇 년간 유관장이 일본에서 중고차를 몰며 고물상 수집 등 온갖 일을 마다 않고 절치부심하며 인생에서 재기할 수 있었던데는 히라노씨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그런 히라노씨의 부탁을 유관장이 거부할리는 없었다.

기무라는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훈련하고 있다. 경기가 없을 때면 일본에서 지낸다. 기무라는 하루 6시간씩 요코하마 시내를 뛰어다니며 광고용 전단지를 돌리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고단한 삶이다.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전단지 아르바이트 만으로도 파김치가 될 법도 하지만 이후 곧바로 전철로 한 시간가량 떨어진 히라노 회장의 체육관에 가서 몸을 푼다. 근성의 복서다.

하지만 경기가 있을 때는 한국으로 와서 유 관장의 지도하에 훈련에만 전념한다. 유 관장은 “로드워크 시간을 시계처럼 잘 지킨다”며 성실한 훈련태도에 흡족한 표정이다.

유관장은 젊은 시절 현재 세계적인 복싱 스타인 필리핀의 매니 파키아오를 잠시 가르친 적이 있다. 최근 WBC 라이트급 챔피언에 올라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4체급을 석권한 그 파키아오다. 그의 경기를 보기 위해 필리핀 여야가 하루 동안 정쟁을 멈췄던 유명한 선수다. 유관장은 파키아오를 잠시 맡아 지도하다 그의 매니저가 될 뻔했으나 사업실패가 겹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당시에는 파키아오가 이런 거물 선수가 될 줄 몰랐다. 그는 “내 인생에도 그런 거물이 스쳐지나갔다”며 웃음을 짓곤 한다.

그런 유관장에게 기무라는 제2의 꿈이다. “복싱 인생 수십년에 모처럼 온 기회다. 제대로 키우고 싶다”며 의욕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복싱을 배운 기무라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동시에 달고 링 위에 오른다. 그는 한국과 일본 프로복싱인들의 우정이 빚어내고 있는 합작품인 셈이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신세기 기자 shk9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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