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패싸움 할 시간” 훌리건 본색

  • 입력 2006년 6월 16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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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사귈 시간(A time to make friends).’

2006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회가 고심 끝에 대회 모토로 채택한 이 문구는 월드컵을 둘러싼 폭력이 ‘실재하는 위협’이라는 사실을 뒤집어 보여 준다.

돌아보면 축구장 안팎은 자주 폭력으로 얼룩졌다. 축구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이들을 지칭하는 ‘훌리건(hooligan)’이라는 표현이 익숙한 이유다. 이 표현이 생긴 것은 최근 50년 사이의 일이지만 그 뿌리는 1800년대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웃 동네끼리 수백 명씩 참가해 축구 경기를 벌였는데 경기는 종종 패싸움으로 연결됐다.

물론 폭력을 유발하는 것이 축구만은 아니다. 532년 로마에서 3만여 명의 사망자를 낸 ‘니카의 폭동’ 원인은 양 팀으로 나눠 겨룬 전차 경주였다.

하지만 현대 스포츠에서 축구만큼 팬들의 폭력이 난무하는 종목은 찾기 어렵다.

‘축구 훌리건’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워 준 사건은 1985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벌어진 ‘헤이설 스타디움 참사’다. 잉글랜드의 리버풀과 이탈리아의 유벤투스가 이 경기장에서 유러피안컵 결승전을 벌였는데 리버풀 팬들이 담을 무너뜨려 유벤투스 팬 39명이 숨졌다.

잉글랜드 훌리건들이 악명 높지만 다른 나라도 만만치 않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미국 전에서 자책골을 넣었던 콜롬비아의 수비수 안드레스 에스코바르는 귀국한 뒤 술집에서 한 축구팬에게 총 6발을 맞고 숨졌다. 2000년 7월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짐바브웨를 이기자 폭동이 일어나 13명이 사망했다.

특히 월드컵이 훌리건의 온상이 되는 이유는 경기를 국가의 대리전쟁으로 보는 극단적인 시각 때문이다. ‘축구, 그 빛과 그림자’의 저자인 우루과이의 저명한 좌파 지식인 에두아르도 갈레아노는 월드컵 경기 시작 전 틀어주는 양 팀 국가(國歌)에 대해 ‘선수들에게 상대를 죽이고 자신들도 함께 죽으라는 일종의 죽음으로의 초대’라고 표현했다. 월드컵이 민족 우월주의와 인종주의가 끼어들 여지가 많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여기에 스포츠 경기가 그 사회의 기저에 흐르는 계급, 계층의 갈등과 불만을 촉발한다는 사회심리학적 시각도 있다.

2006 독일 월드컵에서 독일 당국은 폭력 예방을 위해 만전을 기하고 있다. 독일 경찰은 영국 경찰 등과 협력해 훌리건 전력이 있는 1만 명의 사람을 모니터링하고 있다. 독일 경찰은 최근 ‘유럽의 한일전’인 독일과 폴란드 경기 때 훌리건 300여 명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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