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남극원정 떠나는 박영석씨 “보급없이 버티기 도전”

  • 입력 2003년 11월 13일 19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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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이 허락한다면 기어서라도 꼭 남극점을 밟겠습니다.” 남극점 원정에 나서는 박영석 탐험대장의 결의가 대단하다. 이번 원정에서 쓸 늑대털로 만든 모자를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는 박 대장. -전영한기자
“대자연이 허락한다면 기어서라도 꼭 남극점을 밟겠습니다.” 남극점 원정에 나서는 박영석 탐험대장의 결의가 대단하다. 이번 원정에서 쓸 늑대털로 만든 모자를 세심하게 점검하고 있는 박 대장. -전영한기자
“올 초 북극점 원정 실패 경험을 바탕으로 남극점은 꼭 밟겠습니다. 기어서라도 갈 작정입니다.”

동아일보사 후원으로 16일 남극점 원정길에 나서는 박영석 탐험대장(40·동국대산악부OB·영원무역)은 해외원정 19년 만에 처음으로 ‘기어서라도’라는 표현을 썼다. 그만큼 남극점 원정에 대한 각오가 단단하다는 얘기. 박씨는 출발을 사흘 앞둔 13일 오전 서울 성북구 월곡동 40여평의 사무실에서 가득 쌓인 물품들을 일일이 대조하고 있었다. 벌써 며칠째. 대원들은 박씨의 ‘점호’가 어느 때보다도 세다고 혀를 내둘렀다.

“히말라야는 30번 넘게 다녀왔기 때문에 눈감고도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극지방은 전혀 다릅니다. 북극 원정 땐 정말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올 2월 북극점 원정에 실패했던 이유는 뭘까.

“너무 몰랐고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었죠. 히말라야는 정상 아래 베이스캠프가 있어 든든해요. 반면 극지방 탐험은 중간 보급 없이 한정된 물자만으로 몇 달을 버텨야 합니다. 안전 고리 없이 암벽을 오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북극은 대륙이 아닌 바다라 얼음 위에서 자고 일어나면 수십km 남쪽으로 흘러내려간 경우도 있었단다. 당연히 일정이 길어져 식량과 연료에 문제가 생겼다. 섭씨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곳이라 연료가 바닥나면 꽁꽁 얼어 죽는 수밖에 없다.

“남극은 대륙이라 뒤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외에 북극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어요, 더 춥고 바람도 세고…. 고산 등반에선 날씨가 안 좋으면 캠프에서 대기할 수 있지만 극지방에선 정지하는 순간 실패예요. 일정이 틀어지면 보급에 차질이 오니까요. 아무리 악천후라도 끊임없이 전진해야 합니다.”

북극에서 그 고생을 하고 돌아와 7개월 만에 다시 고난의 길을 떠나는 이유는 뭘까?

“운명이라고 믿어요. 북극을 탐험하면서 터득한 교훈은 대자연 앞에 인간이 너무나 무력하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히말라야 14좌와 세계 7대륙 최고봉을 완등하면서 자만에 빠진 저를 다시 일깨워 준 거죠. 저 같은 미약한 인간이 남극점을 밟는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 실의에 빠진 사람들과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씨는 이번 원정을 앞두고 ‘느낌’이 좋다고 했다.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스폰서 문제가 쉽게 풀려 준비를 착실히 할 수 있었기 때문. 히말라야 원정 비용은 보통 3억원을 넘지 않고 북극의 경우도 5억원을 넘지 않았는데 남극 원정 비용은 무려 7억여원이나 든다고.

박씨는 “북극 원정 때 스폰서를 한 기업들이 이번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며 “나를 믿어 주는 분들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꼭 남극점을 밟겠다”고 다짐했다.

전 창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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