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타계 정봉수감독]마라톤밖에 몰랐던 ‘승부사’

  • 입력 2001년 7월 6일 18시 35분


“쯧쯧, 정말 큰일이야.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황영조나 이봉주 같은 선수가 안보여. 어떻게 쌓아올린 한국 마라톤인데….”

5일 밤 별세한 ‘한국마라톤의 대부’ 정봉수 감독. 3월 열린 2001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현장에 나와서도 연신 한국 마라톤의 앞날만을 걱정했다.

무명의 단거리선수 출신으로 53년 6·25전쟁 때 군에 입대해 장기하사로 근무하며 육군원호단 감독을 맡았던 그는 87년 코오롱마라톤 창단감독으로 부임 후 김완기 황영조 이봉주를 발굴해 한국 마라톤의 꽃을 활짝 피웠다.

그는 마라톤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정 감독에게 선수들은 자식과 같았다. 그는 87년 코오롱 마라톤팀 창단에서부터 늘 선수들과 함께 생활했다. 선수 개개인의 성격 취미 음식기호 잠버릇까지 모르는 게 없었다. 눈빛만 봐도 그들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았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때때로 혈기왕성한 젊은 선수들과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마라톤이란 남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린다든가 아니면 다른 데 신경 쓰면서 할 수 있는 한가한 운동이 아니다. 하루를 놀면 제자리를 찾기 위해 일주일을 강훈련해야 한다. 나도 다 큰 선수들에게 독종이란 소리를 들어가며 이렇게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선수들을 24시간 관리하지 않으면 선수들의 경기력이 저하된다. 그래서 나는 선수들이 잠자리에 드는 걸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안심하고 잠을 잘 수가 있다.”

정 감독은 아무리 자질이 뛰어난 선수라도 연습에서 열외를 인정치 않았다. 타고난 마라토너 황영조도 상상을 초월하는 강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오죽 힘들었으면 황영조는 후에 “훈련 중에 자동차가 지나가면 그바퀴 밑으로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을까.

정 감독은 생전에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불굴의 정신력이다 △교과서대로 지도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니며 각 선수에게 맞는 훈련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지도자는 선수에게 절대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는 지론을 지켰다.

정 감독이 가장 가슴아파하고 충격을 받았던 것은 96년 황영조의 은퇴와 99년 이봉주 등 제자들이 자신의 품을 떠났을 때.

6일 오전 빈소에 달려온 황영조는 “감독님을 독사라고들 하는데 훈련 때 이외에는 아버지 같이 따뜻한 분이셨다. 92년 벳푸마라톤에서 처음으로 2시간10분 벽을 깨고 2시간8분47초로 준우승했을 때 눈물을 글썽이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감독(국민체육진흥공단)이 돼보니 정 감독님의 마음을 알 것 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김화성기자>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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