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하늘로 떠난 '인간기관차'…자토펙 6일 國葬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0분


생전의 자토펙
생전의 자토펙
‘그는 떠났지만 영원히 세계인의 마음에 남아있으리….’

지난달 22일 78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한 ‘인간기관차’ 에밀 자토펙. 6일 체코 프라하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장례식엔 체코 국가와 자토펙의 고향 민요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수천명의 추모인들이 모여 애도의 눈물을 흘렸다.

라미네 디아크 국제육상연맹(IAAF)회장은 “우리가 그의 죽음에 슬퍼하는 이유는 그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4개나 따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도 평범한 한 인간이었으며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온몸을 던진 투사였기 때문이었다”고 애도했다. 이날 장례식엔 체코의 밀로스 제만 수상 등 주요 요인들은 물론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 등 각계 인사가 대거 참여해 슬픔을 함께 했다.

세계기록을 18번이나 작성한 ‘육상계의 큰별’인 자토펙이 달리기를 시작한 것은 아주 단순했다. 구두공장 직원이던 열아홉 청년시절.공장 사장이 크로스컨트리 대회에 한번 나가보라고 등떠미는 바람에 마지 못해 나간게 인연이 됐다.당시 자토펙은 뛰기가 싫어 의사에게 병에 걸렸다고 진단서를 끊어 달라고 했을 정도. 결국 의사가 거절하자 “그래 이왕하는 김에 우승하자”며 뛰어들었다.

그의 집념은 무서웠다. 훈련을 할때는 개스마스크를 쓴 채 다리에 무거운 추를 달고 달렸을 정도. 장거리선수들의 훈련방법으로 정착된 인터벌트레이닝도 그가 개발했다.

68년 ‘프라하의 봄’때는 직접 마이크를 들고 “소련군, 고 홈”을 외쳤다.그가 단순한 육상 스타가 아니라 전인류의 영웅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련군 진주이후 그는 육군 육상팀 코치에서 해임됐으며 체코공산정권으로부터 막노동을 명령받았다. 훗날 그는 “난 프라하의 서쪽 130㎞ 떨어진 자키모브 우라늄탄광에서 땅속 600m나 되는 탄광 막장에서 일했다”고 당시를 회고 했다.

72년 뮌헨올림픽에 초청받을때까지 그의 유배생활은 계속됐다. 공산정권이 물러난 90년 완전히 복권됐지만 이젠 병마와 싸워야 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결핵과 심장박동이상이 겹쳐 올 8월 병원에 입원했고 오랜 투병생활 끝에 꿈에 그리던 시드니올림픽 참석도 못한채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아내 자톱코바와 생년월일(1922년 9월19일)이 똑같다. 52년 헬싱키 올림픽때 자토펙이 5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그날 아내 자톱코바도 여자 창던지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새는 날고 물고기는 헤엄치고 사람은 달린다’. 자토펙의 말이다.

과연 그는 지금 어디쯤 달리고 있을까.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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