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곳에 사는가/과천]소설가 이윤기씨 '과천 예찬'

  • 입력 2000년 11월 19일 18시 38분


◇산…호수…공원…자연에 매료

아침 8시 아파트 문을 나서 노란 은행잎이 쌓인 산책로로 들어선다. 한참을 걸어 서울대공원의 호수를 한 바퀴 돈다. 다시 가로수를 끼고 과천 오피스텔의 집필실까지 낙엽을 밟으며 걷는다. 늘상 아침마다 걷는 길.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추’ 등을 번역한 번역문학가이자 ‘나무가 기도하는 집’ 등을 쓴 소설가로 유명한 이윤기씨(53)의 아침 출근길은 이렇게 30분을 훌쩍 넘긴다.

“과천 서울대공원이 우리집 앞뜰입니다. 대공원의 호수가 연못이고, 매봉산과 청계산 관악산이 우리집 담벼락이지요.”

이씨가 서울 방배동에서 과천으로 이사온 것은 83년. 처음에는 전세로 살다가 과천이 좋아 집을 사 정착했다. 그가 이 곳에 온 이유는 간단하다. 산이 없으면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과천에 와서 당시 다섯 살짜리 아들 가람(22)이와 주말 산행에 푹 빠졌다. 최근 미국 유학 중 귀국한 가람이가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도 관악산 등산. 산이 미치도록 아름답다는 아버지의 핏줄을 이어받은 까닭이다.

그는 자동차가 없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나무를 보며 걷고 싶어서다. 그런 그에게 과천은 버스를 타지 않고 등산할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곳이다. “기분 좋게 등산하고 나서 자동차를 타면 기(氣)가 쑥 빠지는 느낌이 들어요. 과천에서는 집에서 산까지 바로 걸어갔다 올 수 있지요.”

아침마다 집필실로 향하는 그의 출근길은 ‘즐거운 고통’을 맞으러 가는 길이다. 수백 편의 작품을 번역하거나 창작했지만 그에게 글 쓰는 일은 늘 고통스럽다. 완성된 글은 즐거움이지만 그 때까지는 고통이다. 고통을 맞으러 가는 출근길에 가로수는 늘 위로가 된다.

그는 요즘 오후 5시만 넘으면 오피스텔에서 귀가를 고민한다. 해가 떨어지기 전 나무를 보며 집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91년부터 6년간의 미국 생활 중 한국에 들렀을 때도 항상 과천의 호텔에 묵었다.

◇'인간관계' 그린 작품 쓰고싶어

자연은 자주 보고 느낄수록 참맛이 느껴진다. 그런 면에서 그에게 산과 나무는 헤밍웨이의 소설과 같다. “10대에 헤밍웨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 아무 맛이 없었어요. 종이 씹는 맛이랄까요. 20대에 다시 읽은 헤밍웨이는 재미있었고, 30대에는 아주 좋았지요. 40대에 또다시 헤밍웨이 소설을 읽었을 때는 과연 노벨상감이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그가 평생 천착해온 주제는 ‘인간관계’. “한국인들은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다 남에게 쉽게 상처를 줍니다. 나의 작품들을 통해 독자들이 다양한 인간관계를 꾸려나가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가 앞으로 써보고 싶은 소설도 작은 마을에서 벌어지는 인간관계를 미세한 부분까지 표현한 작품이다. 작은 마을은 곧 세계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인간을 고민하는 그의 곁에는 늘 산과 나무가 있다.

▲ 관련기사

[왜 이곳에 사는가/과천]저층 아파트 '재건축 바람

[왜 이곳에 사는가/과천]재정자립도 선두

[왜 이곳에 사는가/과천]볼거리-즐길거리

<과천〓이은우기자>libr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