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종범이 지독하게 시달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주 개막 3연전에서 히로시마 카프 투수들은 집요하게 바깥 쪽 낮은 공을 구사하다가 가끔씩 몸 쪽 높은 공을 던져 그를 헷갈리게 했다. 스트라이크존을 낮게 잡고 있던 이종범은 불쑥 들어오는 높은 공에 말려들기 일쑤였다. 첫날 두번째 타석에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이종범은 야구천재답게 놀랍도록 빨리 적응했다. 셋째날 세번째 타석에선 낮은 공을 가운데 안타로, 네번째 타석에선 바깥 쪽 높은 공을 밀어쳐 2루 강습안타로 연결시키며 결승타점을 올렸다. 경기가 끝난 다음날 필자와 친한 한 일본 해설가는 “역시 소문대로군”을 연발했다.
일본야구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감독위주의 야구, 잦은 작전과 선수교체를 하지 않으면 마치 직무유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야구, 얄미울 정도로 염탐과 분석에 매달리는 야구, 외국인 선수가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을 눈뜨고 못보는 야구 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분재 같은 토양속에서 이종범이 과연 한국의 들국화를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을지 그의 첫 해를 지켜보자.
허구연〈야구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