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 야구읽기]「들국화」이종범의 「분재야구」

  • 입력 1998년 4월 7일 19시 30분


일본이 ‘분재(盆栽)야구’라면 한국은 ‘들국화야구’다. 같은 들국화지만 이종범은 선동렬보다 훨씬 강인한 인상을 풍긴다. 이는 투수인 선동렬이 타자와의 대결에서 주도권을 쥐는데 비해 타자인 이종범은 여러 투수의 까다로운 공을 상대해야 하는 수세적 입장인 때문이다. 필자는 주니치 드래건스의 경기가 끝나면 일본으로부터 분석표를 받아본다. 선동렬이 타자에게 어떤 공을 던졌는지, 투수들이 이종범을 어떻게 공략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자료다.

그런데 이를 보고 있노라면 ‘이종범이 지독하게 시달리고 있구나’ 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지난주 개막 3연전에서 히로시마 카프 투수들은 집요하게 바깥 쪽 낮은 공을 구사하다가 가끔씩 몸 쪽 높은 공을 던져 그를 헷갈리게 했다. 스트라이크존을 낮게 잡고 있던 이종범은 불쑥 들어오는 높은 공에 말려들기 일쑤였다. 첫날 두번째 타석에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삼진을 당한 것이 그 좋은 예다.

그러나 이종범은 야구천재답게 놀랍도록 빨리 적응했다. 셋째날 세번째 타석에선 낮은 공을 가운데 안타로, 네번째 타석에선 바깥 쪽 높은 공을 밀어쳐 2루 강습안타로 연결시키며 결승타점을 올렸다. 경기가 끝난 다음날 필자와 친한 한 일본 해설가는 “역시 소문대로군”을 연발했다.

일본야구는 독특한 개성을 지니고 있다. 감독위주의 야구, 잦은 작전과 선수교체를 하지 않으면 마치 직무유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쁘게 움직이는 야구, 얄미울 정도로 염탐과 분석에 매달리는 야구, 외국인 선수가 타이틀을 차지하는 것을 눈뜨고 못보는 야구 등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분재 같은 토양속에서 이종범이 과연 한국의 들국화를 찬란하게 꽃피울 수 있을지 그의 첫 해를 지켜보자.

허구연〈야구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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