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몰래 켜진 통화녹음 기능…재판 증거로 쓰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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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4년 1월 8일 07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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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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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몰래 휴대전화 통화녹음 기능을 작동시켰더라도 당사자와의 통화는 사생활 침해 여지가 크지 않다면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반면 휴대전화 소유자와 제3자와의 통화는 ‘상대방 동의 없는 녹음’으로 불법 감청에 해당해 증거능력이 없다고 봤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이흥구)는 공공단체 등 위탁선거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A, B씨에 징역 10개월을, C씨에 징역 1년 4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 등은 2019년 3월 실시된 수산업협동조합 조합장 선거 후보자 C씨의 선거운동원으로 활동하며 금품 제공·선거인 방문·대량 메시지 발송 등 불법 사전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A씨로부터 압수한 휴대전화 포렌식을 통해 A씨와 그의 배우자 D씨, 다른 피고인 간 통화 녹음 파일을 확보해 모두 공소사실 증거로 제출했다.

당초 A씨의 휴대전화는 통화 녹음 기능이 꺼져있었지만, 불륜을 의심한 아내 D씨가 몰래 자동녹음기능을 활성화해 상당 기간의 통화 녹음 파일이 저장돼 있었다.

자연스레 당사자 동의 없는 통화 녹음이 증거능력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A씨와 D씨 간 통화뿐 아니라 A씨와 피고인들 사이 통화 녹음이 모두 증거능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A, B씨와 C씨에 각각 징역 10개월과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은 배우자와의 통화는 증거능력이 있다고 보면서도 다른 피고인들과의 녹음 파일은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감청’은 전화 발신인과 수신인 사이 동의 없이 녹음된 기록을 말하는데, A씨와 배우자 D씨 간 통화는 한 쪽이 녹음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므로 감청으로 볼 수 없다.

반면 제3자(다른 피고인)는 통화 녹음에 대한 동의가 없었기에 ‘불법감청에 의해 녹음된 전화통화’로 증거능력이 부정된다.

C씨는 일부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범행 최종 책임자라는 이유로 징역 1년4개월로 형량이 늘었다. A, B씨의 형량은 1심 그대로 유지됐다.

A씨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배우자와의 녹음 파일은 ‘사인(개인)에 의한 위법수집증거’로 증거능력이 없다고 주장하며 상고했다.

대법원은 ‘정당한 증거 수집’이라며 상고를 기각했다.

A씨 배우자가 직접 대화를 나누면서 통화를 녹음했으므로 이로 인해 A씨의 사생활 비밀이 침해되었다고 보기 어렵고, 음성권 등의 침해 정도도 비교적 경미하다고 판단했다. 배우자가 녹음파일을 외부에 유출하지 않았다는 점도 참작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증거수집 절차가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해 사회통념이 허용한 한도를 벗어났다면 진실발견이라는 공익이 우월하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 침해 한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증거로 사용할 수 있다.

대법원은 또 범행 증거 수집을 위한 의도로 녹음이 이뤄지지 않았고, 수사과정도 적법하게 압수한 휴대전화를 분석하던 중 파일을 발견했다는 점도 참작했다.

아울러 선거 과정의 금품 살포 행위가 ‘돈 선거’를 조장하는 중대범죄가 될 수 있어 범행 내용이 담긴 녹음파일의 증거 사용 필요성이 타당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사인이 수집한 사생활 영역 관련 증거의 증거능력 판단기준에 관한 대법원 판례를 재확인했다”면서도 “증거 능력을 볼 때 녹음 경위·내용 등이 사생활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 증거능력이 부정될 수 있음을 처음으로 밝혔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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