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명품 소비 심리 분석한 경제학자 베블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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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고 믿습니다. 가격과 수요는 반비례한다는 현대 경제학의 기본 가설인 애덤 스미스의 말까지 들먹이지 않아도 비싸면 당연히 구매를 망설일 거라 여깁니다. 정말 그럴까요?

19세기 말 활약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사진)은 대표 저서 ‘유한계급론’(1899년)에서 소비자가 합리적이라는 가설을 부정합니다. 베블런은 충분한 부를 가진 상류층 소비자는 상품의 효용 가치가 아니라 과시 효과 때문에 값비싼 물건을 소비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사치재의 가격은 비쌀수록 수요를 유발하는데 이를 ‘베블런 효과’라고 합니다. 한편 이런 상류층의 소비 행태를 부러워하면서 무리를 해서라도 따라 하는 것을 ‘파노블리 효과’라고 부릅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소비 형태라는 점에서 스놉 효과(Snob effect)도 베블런 효과와 함께 많이 이야기됩니다. 일명 ‘속물 효과’라고도 부르는데, 다른 사람이 이미 산 물건이나 유행하고 있는 재화는 수요가 떨어지는 걸 말합니다. 이 역시 남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반영된 소비 형태입니다. 한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외되지 않으려고 대중적인 유행에 편승하는 소비 형태를 ‘밴드왜건 효과’라고 합니다.

‘VIP 마케팅’은 이런 심리들을 기반으로 합니다. 구매력이 충분한 상류층은 물론이고, 상류층이 가진 문화와 소비 양식을 선망하고 좇아 가려는 사람들까지 모두 고가로 책정된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으로 끌어들이면 엄청난 매출을 창출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정판’은 바로 그 정점에 있는 전략입니다. 제한된 수량만 판매하는 ‘한정판’은 구매자를 안달 나게 만들어 판매 개시 며칠 전부터 매장 앞에 긴 줄을 만들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제품에 더 높은 금액이 책정됩니다.

올해 들어와 명품 브랜드 가격은 이미 줄줄이 인상되었습니다. 이미 7월에 불가리와 크리스찬 디올이, 올 하반기(7∼12월)에는 샤넬이 가격 인상에 나서겠다고 합니다. 아마도 베블런 효과를 찰떡같이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긴 우리나라 명품 시장이 하향 곡선을 그린 적은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사실 능력에 맞는 소비는 경제가 더욱 원활하게 돌아가게 해주는 윤활유 역할을 합니다. 하지만 375mL 한 병에 거의 1만 원이나 하는 노르웨이 수입 브랜드 ‘보스워터’ 생수가 없어서 못 팔 정도인 걸 보면 그 정도가 심하지 않나 싶습니다.

베블런은 현대사회 유한계급의 소비가 생산성 향상이나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로지 ‘소비’ 자체에만 머문다고 비판했습니다. 과소비가 오늘날 빈부격차에 따른 사회 불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점에서 베블런의 말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9999@hanmail.net
#명품 소비 심리#소스타인 베블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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