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영 강원대 총장 “‘지학 협력’ 생태계 구축으로 지방대 위기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8일 12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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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영 강원대학교 총장. 강원대학교 제공

“지방대학뿐만 아니라 모든 대학이 위기에 놓여 있다고 봐야 합니다. 수도권대학이나 국가거점 국립대학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인 거죠. 결국 대학 스스로가 체질 개선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방대학은 교육·연구 인프라를 활용해 지학(地學) 협력에 박차를 가해야 합니다.”

최근 학령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지방대학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김헌영 강원대학교 총장은 1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각종 규제와 재정 문제 등으로 지방 대학이 시대에 발맞춰 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총장은 대학의 주요 위기 원인으로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집중 △4차 산업혁명 등을 꼽았다. 여기에 지방대학들이 시대에 발맞춰 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역시 지방대학이 학생들의 외면을 받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해결책으로 대학 입학정원 10% 감축과 정원 감축에 비례한 정부의 재정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김 총장과 지방대학의 위기와 한국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대담을 나눴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방대학이 맞은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한다고 보나.
“지방대학은 단순히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하는 기관에 머물러선 안 된다. 지역 간 격차를 해소하고 지방의 붕괴를 막는다는 사명을 갖고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또 정부와 기업 등 지역사회 전체가 힘을 모아 지방대학의 역량 강화를 위해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유능한 지역 인재들이 졸업 후에도 지역에 정착할 수 있도록 ‘교육-취·창업-정주’의 선순환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강원대는 지난 2019년부터 강원 특별자치도, 육군 2군단과 협력해 ‘강원열린군대’ 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를 통해 군 장병들에게 취·창업 교육을 제공하고, 전역 후 성공적인 사회진출 및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있다는 평가다. 그 외에도 리빙랩(Living Lab)을 통해 대형산불·태풍·집중호우 등 지역 현안 해결에 앞장서고 지방정부와 협력한 캠퍼스 혁신파크 사업과 지역혁신(RIS) 사업 등을 통해 지역혁신과 발전을 이끌고 있다.

―올해 수능시험을 앞둔 고교 3학년 학생 수가 사상 처음으로 40만 명 밑으로 떨어졌다.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할 방법을 제시한다면.
“대입 정원 역전은 이미 1996년부터 예측된 해묵은 숙원과제다. 결론을 먼저 제시하자면 학령인구 감소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모든 대학이 자율적으로 입학 정원을 10% 정도 감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2030년부터 시작되는 학령인구 대폭락기를 늦추는 동시에 각 대학이 역량 강화를 통해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아울러 정원 감축이 대학의 재정수입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정원 감축에 비례한 재정지원이 반드시 병행돼야 할 것이다.”

김 총장은 15년째 등록금이 동결되고 학령인구까지 감소하면서 대학의 재정난과 경쟁력이 동시에 약화한 것에 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첨단산업 육성 등 고등교육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함께 대학의 재정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전폭적인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등록금 규제 개선과 적정한 범위 내에서 등록금을 자율화하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교육 현장에도 디지털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미래 교육을 준비하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나.
“첨단인재의 확보는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과제다. 이제는 교육의 역할, 특히 대학의 역할이 과감하게 바뀌어야 한다. 단순히 지식을 가르치는 곳에서 벗어나 문제해결 능력을 갖춘 창의형 인재를 육성하는 곳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산업현장에서 선호하는 ‘T자형 융합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T자형 인재란 전공지식과 전문성을 겸비하는 동시에 다양한 분야와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말한다. 강원대는 이미 2018년 창의·융합 교육을 위해 ‘미래융합가상학과’를 도입했다. 5년이 지난 현재 39개 전공으로 확대된 만큼 성공적인 사례로 자신한다. 학원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협동, 소통 역량을 가르칠 수 없다. 앞으로 대학은 다양한 사람과 활동을 통해 보다 가치 있는 교육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지난 4월 정부가 첨단인재 양성을 위해 대학 정원을 증원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 총량규제 완화에 대해 지방대학의 우려가 큰데.
“물론 첨단인재 양성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학령인구 감소, 수도권 과밀화 등을 고려할 때 수도권 대학까지 정원을 늘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방안이었는지 아쉬움이 크다. 첨단학과를 새로 개설하는 대안으로 융합 전공을 확대하는 것이 더 좋은 방안이 될 수 있다. 기존의 주전공, 첨단분야 등을 연계한 융합 교육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학과 신설에 따른 입학 정원 확대는 대학 내부에서 조정하는 ‘탄력정원제’ 등의 방안이 바람직하다. 이 밖에도 지역별, 산업 분야별로 대학-기업-지방정부 등이 협력해 인프라, 자원을 공유하는 ‘공유대학’ 등의 방안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8년 대입제도 개편을 위한 대입정책자문회의 의장을 맡고 있는데 향후 대학입시 제도의 변화를 예측한다면.
“2025년 고교학점제 전면 도입이 적용되는 첫 세대인 2009년 출생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는 시기에 맞춰 새로운 대입제도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대학 입시는 결코 교육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최근 ‘킬러 문항’ 논란에서 보듯이 교육 현장의 패러다임은 창의 맞춤형 교육으로 변하고 있는데 수능은 여전히 오지선다형 문제 풀이 기술을 훈련하는 학생을 길러내는 데 머물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학 교육이 변해야 초중등교육이 혁신할 수 있는 구조다. 이를 위해 대학-초중등교육 간 협력을 강화하고 학생들이 대학 수준의 지식과 수업을 미리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수능을 자격고사로 전환하고 입학 전형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창의적 문제해결 능력, 리더십, 적극적인 태도, 협동과 소통역량 등은 수능점수로 변별하기 어렵다. 각 대학이 건학이념, 인재상, 특성화 등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권한을 확대해야 한다.”

―최근 교육부가 지정한 ‘글로컬대학 30’ 사업에 예비 지정대학으로 선정됐다. 강릉원주대와 ‘1도(道) 1 국립대’를 추진 중인데, 구체적인 계획은.
“강릉원주대와 공동으로 ‘1도 1 국립대’ 구축을 통해 지역 밀착형 캠퍼스를 구현하겠다는 핵심 방향을 제시했다. 두 대학 간 공유·연합·통합 모델을 기반으로 캠퍼스별 글로컬 대학도시를 구현하겠다는 비전이다. 구체적으로 춘천캠퍼스-교육 연구거점, 원주캠퍼스-산학협력 거점, 강릉캠퍼스-지학연협력거점, 삼척캠퍼스-지역 산업거점으로 육성함으로써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는 계획이다. 강원대가 추진 중인 ‘1도 1 국립대’는 캠퍼스별 특성화 및 경쟁력을 강화하고 학문적 다양성 제고 등을 통해 대학의 평판도, 지역 상생 등의 지표를 크게 향상하는 중대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조지윤 기자 geor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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