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을 이어온 인연…해남군- 중국 옹원현 한·중 관광 새 시대 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16일 14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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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 명나라 진린 장군의 후손들이 사는 광동진씨 집성촌이다. 마을에는 중국 방향인 서향집들이 많다. 해남군 제공
“우리 마을이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가교역할을 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중국 정부가 6년 5개월 만에 한국 단체여행 빗장을 푼 것을 무척이나 반기는 이들이 있다. 전남 해남군 산이면 황조마을 주민들이다. 광동 진씨(廣東陳氏) 집성촌인 이 마을은 2014년 국빈 방문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서울대 강연에서 ‘명나라 통수 진린의 후예가 조선에서 뿌리를 내렸다’고 말한 바로 그곳이다. 광동진씨의 시조인 진린(1543~1607)은 중국 광동성 옹원현에서 태어났다. 정유재란 당시 수군 도독으로 출병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군을 물리쳤다. 우여곡절 끝에 후손들이 황조마을로 이주해 정착하면서 집성촌을 이뤘다. 현재 광동진씨는 전국적으로 3000여 명이 살고 있다. 황조마을에는 56가구가 산다. 수백 년 전 떠나온 고향 생각 때문인지 황조마을에는 중국 쪽을 바라보고 지어진 집들이 많다.

●400년을 이어온 인연


진린의 손자인 진조는 청의 침략으로 명나라 의종이 나무에 목을 매고 자결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은거했다. 명나라가 망하자 “원수들과 하늘을 같이 할 수 없다”며 조선으로 이주를 결심했다. 1644년 난징에서 출발한 진조는 경남 남해 장승포에 도착했다. 이후 조부 진린이 진을 쳤던 완도 고금도로 옮겨와 살다가 다시 해남으로 나와 정착하면서 아들 석문을 낳았다. 진석문은 12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해남의 현재 위치로 이주했다. 후에 마을 이름을 명나라 황제의 조정에서 큰 벼슬을 한 충신의 후예가 유민으로 들어와서 산다는 의미로 ‘황조(皇朝)마을’이라고 했다.

이런 인연으로 해남군과 옹원현은 1999년 자매결연을 한 뒤 꾸준히 교류를 해왔다. 해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 승리를 기리는 명량대첩축제에 진린 장군 후손들을 초청하는 등 우의를 다져왔다. 11일 두 도시는 해남에서 의미 있는 행사를 열었다. 자매결연을 넘어 국제우호도시 협약을 체결하고 구체적인 교류 방안을 논의했다.

옹원현 방문단은 12일 황조마을을 찾았다. 마을에 있는 황조별묘(皇朝別廟)를 참배하고 광동진씨 종친들과 차담회를 가졌다. 황조별묘는 진린과 아들 손자, 증손자까지 모두 4대를 제사 지내는 사당이다.

진경영 광동진씨 종친회장(64)은 “마을을 방문하기 이틀 전 중국 정부가 자국민의 한국행 단체 여행을 전면 허용한다는 발표가 전해진 터여서 자연스럽게 유커(중국 관광객) 이야기가 나왔다”며 “광동진씨 후손부터라도 자유롭게 왕래하는 등 민간 차원에서 먼저 물꼬를 트자고 했다”고 전했다.

광동진씨 종친회는 중국에 진씨가 8000만 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진 회장은 “진씨 성을 가진 사람의 1%만 와도 80만 명이다”며 “중국 관광객을 위한 맞춤형 관광코스를 개발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고 말했다.

● 한-중 우호협력 상징 황조별묘


황조별묘는 중국대사 등 유력인사와 중국 유학생이 자주 찾으면서 한-중 우호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1680년(숙종 6년) 단을 만들어 진린을 제향하다가 1871년(고종 8년) 별묘를 건립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2003년 향토문화유적 제10호로 지정됐다. 옹원현 진씨 문중은 2년에 한 번씩 한식날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12일 황조마을 내 황조별묘를 찾은 중국 용원현 방문단. 황조별묘는 중국대사 등 유력인사와 중국 유학생이 자주 찾는 한-중 우호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해남군 제공
해남군과 옹원현은 국제우호도시 협약을 계기로 산업과 문화, 관광, 스포츠, 교육, 행정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하기로 했다. 다음 달 8일부터 사흘간 열리는 명량대첩축제에 옹원현 방문단 20여 명이 해남을 찾을 예정이다.

해남군은 무엇보다 농수산물 수출과 문화·예술 분야 교류 확대를 꾀하고 있다. 중국에서 관심이 큰 유기농 차와 인삼 등 농산물을 홍보하고 난초 전시회, 서예전 등 민간 부문의 교류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중국 관광객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해남을 중국인 관광의 메카로 만든다는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명량대첩지와 황조별묘, 진린 장군이 완도 고금도에 조성한 관왕묘 등을 연계한 여행코스를 개발하면 새로운 관광수요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명현관 해남군수는 “중국인의 단체 관광길이 열림에 따라 중국의 역사를 이야기할 수 있는 해남이 기회의 땅으로 부상하고 있다”며 “관광길이 열리면 지난해 중국인 관광객이 단 한 명도 찾지 않았던 무안국제공항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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