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표류’ 끝 숨진 10대…빈 병상 있는데도 안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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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년 5월 4일 10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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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 거부한 병원 4곳 제재

뉴시스.
지난 3월 대구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0대가 2시간 넘게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표류’하다가 숨진 사건과 관련해, 당시 환자의 수용을 거부한 의료기관들이 행정처분을 받게 됐다.

보건복지부(복지부)는 소방청, 대구시와 합동 현장조사 및 전문가 회의 결과를 토대로 ▲대구파티마병원 ▲경북대병원 ▲계명대동산병원 ▲대구가톨릭대병원에 대해 응급의료법에 따라 행정처분을 실시한다고 4일 밝혔다.

이들 의료기관들은 ‘정당한 사유 없는 수용거부’를 이유로 시정명령과 이행시까지 보조금 지급 중단 등의 처분을 받게 됐다.

앞서 지난 3월19일 오후 2시15분경 대구 북구에서 A 양(17)이 4층 높이의 건물에서 떨어져 우측 발목과 왼쪽 머리에 부상을 입었다. 발견 당시에는 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긴급 출동한 구급대는 오후 2시34분경 A 양을 동구의 대구파티마병원으로 이송했다. 하지만 병원은 전문의가 없다는 이유로 환자를 받지 않았다.

두 번째로 찾은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서도 환자의 입원을 받아주지 않았다. 응급환자가 많아 수용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이후 119구급상황관리센터가 두 차례에 걸쳐 전화했는데 병상이 없고 다른 외상환자를 진료하고 있다며 환자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복지부는 조사 결과 두 번째 의뢰 당시엔 병상이 하나 있었고, 의료진 일손에도 여력이 있었다고 전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과 계명대동산병원 역시 A 양을 받지 않았다.

결국 A 양은 구급차에 실린 지 2시간이 지난 오후 4시30분경 다른 병원으로 인계하는 과정에서 심정지 상태가 됐다. 구급대는 심폐소생술(CPR) 등을 실시하며 대구가톨릭대병원으로 다시 옮겼지만 이미 숨을 거뒀다.

복지부는 이들 4곳 병원에 ▲ 병원장 주재 사례검토회의와 책임자 조치 ▲ 재발방지대책 수립 ▲ 병원장 포함 전체 종사자 교육 ▲ 응급실 근무 전문의 책임·역할 강화 방안 수립 ▲ 119 구급대 의뢰 수용 프로토콜 수립 ▲ 119 수용 의뢰 의료진 응답대장 기록 등의 시정명령을 내렸다.

A 양 사고 당시 구급대가 가장 먼저 도착했던 대구파티마병원에서 당시 근무 중이었던 의사는 중증도를 분류하지 않고 정신건강의학과 진료 등이 필요해 보인다는 이유로 다른 의료기관에 이송할 것을 권유했다.

구급대원이 외상만이라도 응급진료를 수용해줄 것을 재차 의뢰했으나 해당 의사는 정신과적 응급환자에 대한 진료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다시 미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복지부는 대구파티마병원에 공통 시정명령 외에 모든 응급환자는 환자분류소로 우선 진입시켜 중증도를 분류하고 정신건강의학과 365일 응급실 진료 협조체계 구축 등 시정명령을 추가로 이행하도록 했다.

또 6개월 간 응급의료기관 평가 보조금 4800만 원을 지급 중단하고, 22일 간 영업정지 수익에 해당하는 3674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두 번째로 이송됐던 경북대병원도 전문가들은 경북대병원 권역외상센터에 당시 A 양을 수용할 병상이 있었고 진료 중이었던 다른 환자들 중 상당수는 경증환자여서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복지부는 경북대 병원에도 6개월 이내 시정명령을 이행하는 동안 권역응급의료센터 및 권역외상센터로서 지원받는 보조금 2억2000만 원을 중단하기로 했다. 과징금 1670만 원도 부과했다.

계명대동산병원과 대구가톨릭대병원도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한 데 대해 6개월 이내 시정명령을 받았다. 이 기간 지역 응급의료센터로서 보조금 4800만 원이 지급 중단된다.

계명대동산병원은 응급실에 2회에 걸쳐 각 구급대원, 대구 119 구급상황관리센터가 전화를 걸어 A 양을 수용해 달라고 의뢰했으나 외상환자 수술이 시작됐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대구가톨릭대병원도 구급대원의 수용 의뢰 전화에 신경외과 의료진이 학회 참가 등으로 부재해 수용할 수 없다고 답했다.

복지부는 이번 사건이 119 구급대와 지역 응급의료체계의 문제라고 보고 대구시에도 관련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지역 응급의료 자원조사를 기반으로 이송지침 마련과 응급의료체계와 관련 협의체 구성과 운영 등을 권고했다.

아울러 지난 3월 발표한 ‘제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 과제와 연계해 ▲이송 중 구급대의 환자 상태 평가 강화 및 이송 병원 선정 매뉴얼 마련 ▲의료기관의 환자 수용 곤란 고지 프로토콜 수립 ▲지역별 이송 곤란 사례를 검토하는 상설협의체 운영 등 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김예슬 동아닷컴 기자 seul5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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