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폭으로 숨진 딸 영정 들고 졸업식 간 엄마…“교사가 ‘저건 또 뭐야’ 말해”

  • 동아닷컴
  • 입력 2023년 4월 13일 09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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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측 “박 양 사건, 항상 안타까움 가지고 있다”

2015년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녀의 영정사진을 들고 A여고 졸업식에 참석한 이기철 씨. 이기철 씨 페이스북 캡처
2015년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녀의 영정사진을 들고 A여고 졸업식에 참석한 이기철 씨. 이기철 씨 페이스북 캡처

권경애 변호사의 재판 불출석으로 학교폭력 소송에서 패소 당한 고(故) 박주원 양의 모친이 학교 졸업식에 딸의 영정사진을 들고 참석했다가 냉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 교사로부터 ‘저건 또 뭐야’라는 말까지 들었다고 전했다.

박 양의 어머니인 이기철 씨는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영혼이 참석했던 졸업식’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씨는 2015년 학폭으로 사망한 딸의 2018년 2월 8일 졸업식에 영정사진을 손에 들고 참석했다.

당시 교직원들은 이 씨가 졸업식에 참석한 것에 대해 내키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한 교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어떻게 오셨냐”, “어머니가 원하시는 게 뭐냐” 등의 질문을 이어갔다. 이에 이 씨는 “졸업식에 참석해서 발언할 것”이라며 “학교 차원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딸과 남은 가족들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하자 해당 교사는 “그런 뭐…”라며 말끝을 흐렸다고 한다.

이 씨는 딸 박 양의 영정사진을 들고 졸업식이 진행되는 강당 내부로 들어갔을 때는 많은 참석자가 뜨악한 눈빛을 보내며 수군거렸다고 전했다. 특히 한 교사는 박 양의 영정사진을 보자마자 “저건 또 뭐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이 씨는 “그 나이쯤 되면 척 봐도 상복 차림의 사람이 든 사진이 영정사진이라는 걸 알만한데도 교육자인 사람이 저거라니”라며 “사물이 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졸업식에서 학교 측이 보여준 태도와 관련해 “교장이 내빈 소개를 하는데 내 차례가 되자 딸이 학교폭력으로 투신 사망해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는 뚝 떼어내고 단순히 ‘졸업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된 아이의 어머니가 대신 졸업식에 참석했고 자신들이 지난 3년간 마음으로 함께 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급조된 명예 졸업장을 줬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들은 어떻게든 모양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었다. 앞뒤 전후를 모르는 사람이 보는 이 상황은 학교가 하해와 같은 큰 배려로 딸과 나를 미리 초대해서 명예 졸업장을 수여하는 모습이었을 것”이라며 “이사장을 비롯한 내빈, 교사들 그 누구도 나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투명 인간 취급을 했다”고 주장했다.

2015년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녀의 영정사진을 들고 A여고 졸업식에 참석한 이기철 씨. 이기철 씨 페이스북 캡처
2015년 학교폭력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자녀의 영정사진을 들고 A여고 졸업식에 참석한 이기철 씨. 이기철 씨 페이스북 캡처

이 씨는 이후 발언 기회를 얻고 졸업식 단상에 올라가 “여러분들 중에는 박 양이 누군지, 제가 누군지 아는 분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까 교장선생님께서 박 양과 저를 소개할 때 졸업식에 참석하지 못하게 된 아이라고 단순히 말씀하셨지만, 박 양은 학교폭력 A여고 왕따 사건으로 시달리다 하늘나라로 간 아이이고, A여고는 박 양이 그렇게 당한 것에 대해서 가해자, 피해자 없음으로 처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졸업생 403명 중에 단 한 명도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며 여러분 모두가 사회로 나가 시련이 생긴다 해도 실망하지 말고, 박 양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손잡아 주고, 어른들의 비겁함을 배우지 말고, 젊은 여러분이 희망이니 사람답게 함께 사는 세상, 스스로 주인이 되어 만들어 주시길 부탁합니다”라고 했다.

이 씨는 교장이 자신이 발언하는 내내 안절부절했고, 자신의 마이크를 빼앗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호응을 보냈다고 한다.

이 씨는 “졸업생들과 학부모들은 강당을 빠져나가지 않은 채 서 있던 그대로 멈춰서 서 나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줬으며 일부 학부모는 박수도 쳤다”며 “사죄도 용기가 필요한 것인데 오늘도 A여고는 용기가 없는 비겁함을 보였다. 단상 위에서 발언하는 나를 꼼짝하지 않고, 시선 마주치고 공감하면서 들어주던 아이의 모습들이 그나마 가슴에 남는 하루였다. 이래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낫다”고 말했다.

A여고 관계자는 동아닷컴과의 통화에서 “당시 박 양의 어머님이 학교와의 사전 협의 없이 상복과 영정을 들고 나타나 모든 교사들이 당황했던 것 같다”며 “학교 측은 갑자기 오신 박 양의 어머님을 위해 명예 졸업장도 그 자리에서 만들었으며 최대한의 예우를 해드렸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한 교사가 이 씨에게 ‘저건 또 뭐야’라고 말한 것에 대해 “박 양의 어머님이 갑자기 들어오셔서 당황하셔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말한 교사는 지금 확인할 수 없다”며 “A여고는 박 양의 사건과 관련해 항상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씨가 발언을 할 당시 교장이 마이크를 빼앗으려고 했다는 주장과 관련해선 “졸업식 폐회 직전 박 양의 어머님께 발언권을 드렸다. 당시 옆에 서 있던 교장선생님은 현재 퇴임하신 상태”라며 “아마 박 양의 어머님의 말씀이 길어질까 봐 그걸 염려 한 것 같다. 빼앗으려는 움직임은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마지막으로 “A여고가 매도되는 게 안타깝다”고 했다.

박 양은 2015년 A여고 재학 중 집단따돌림을 받다 같은 해 5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유족은 서울시교육청과 학교법인, 가해자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유족의 법률대리인이었던 권경애 변호사가 지난해 9월부터 11월 사이 3차례 열린 항소심 재판 모두 불출석해 최종 패소 판결을 받았다. 유족은 권 변호사를 제명할 것을 대한변호사협회에 요구했고, 변협은 징계 개시 절차에 들어갔다.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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