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축구로 브라질에 희망을 안겨준 펠레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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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남미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어릴 때부터 남다릅니다. 평범한 초등학교가 6개의 축구 전용구장을 가지고 있는 건 예사고, 10개의 축구팀이 그 전용구장을 쓰겠다고 서로 다투는 모습도 흔한 풍경입니다. 축구 동호회와 프로 축구팀은 한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많습니다.


20세기 남미의 역사는 피로 얼룩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정치 혼란에 인종 갈등, 부패 문제 등으로 혁명이 자주 일어났고, 유혈 사태가 잦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중남미 국민들을 위로해준 건 다름 아닌 축구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축구 황제’ 펠레(1940∼2022·사진)가 있습니다.

본명이 ‘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인 펠레는 1940년 브라질에서 흑인 혈통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집이 가난해 축구의 기본을 아버지에게서 배웠지만, 1956년 16세의 나이로 산투스 축구팀에 입단하면서 뛰어난 골 감각을 인정받아 곧바로 주전으로 기용되었습니다.

1958년 고작 18세의 나이로 스웨덴 월드컵에 출전한 그는 신기에 가까운 실력을 선보입니다. 빠른 드리블과 패스를 비롯해 강력한 양발 슈팅과 흠잡을 데 없는 체력은 최강이었습니다. 펠레는 준결승에서 프랑스를 상대로 최연소 해트트릭(한 선수가 한 경기에서 3골 이상 넣는 것)을 기록했고 이어 스웨덴과의 결승전에서는 두 골을 성공시켜 고국 브라질을 첫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펠레가 혜성처럼 등장해 자신의 고국에 우승을 안기자 세계가 열광합니다. 이후 펠레는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까지 이탈리아를 꺾고 브라질이 우승을 차지하는 데 큰 활약을 합니다. 펠레가 일으킨 돌풍은 고국인 브라질에는 국민 간의 화합, 가난한 제3세계 어린이들에게는 강력한 꿈과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은퇴한 후에도 펠레는 평생 축구와 관련된 활동을 했습니다. 고국 브라질에서는 체육부 장관을 맡아 브라질 축구 체제를 대대적으로 개혁했습니다. 다양한 축구 홍보 활동을 했으며, 죽기 직전까지 전 세계의 축구 선수들과 소셜미디어로 교류하면서 용기와 희망을 주었습니다. 특히 ‘제2의 펠레’로 불리는 프랑스의 킬리안 음바페 같은 선수들이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강한 영감을 주었습니다.

그런 펠레가 지난해 12월 30일 타계했습니다. 세계는 ‘펠레가 곧 축구였고 축구가 곧 펠레였다’며 그를 애도했습니다. 펠레가 몸담았던 브라질 명문 구단 산투스는 펠레가 달았던 등번호 1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습니다. 펠레 이후로는 아무도 그 번호를 달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펠레가 위대했던 건 축구 역사에 남은 그의 기록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정치적으로 암울했던 브라질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축구를 통해 지구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세계가 그의 경기를 보며 열광했고 고국인 브라질은 그를 국부(國父)로 칭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위대했던 펠레의 시대가 막을 내린 겁니다.

이의진 누원고 교사 roserain@hanmail.com
#축구#브라질#펠레#에드송 아란치스 두 나시멘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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