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끄느라 투표도 못 해”…‘213시간’ 버틴 진화대원들

  • 뉴시스
  • 입력 2022년 3월 19일 10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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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시간.

울진 산불이 지난 13일 꺼지기 전까지 타올랐던 시간이자, 진화대원들이 화마와 악전고투를 벌였던 시간이다.

이번 산불은 최장기간, 최대 규모 피해라는 기록을 남겼지만 밤낮없이 현장을 지킨 대원들 덕에 한울 원전, 금강송 군락지 등 핵심 지역을 무사히 지킬 수 있었다.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9일 간의 치열했던 울진 산불 진화기를 울진산림항공관리소 김창섭(52) 안전항공팀장에게 전해 들었다. 김 팀장은 대책 본부에서 공중진화대원 78명을 지휘했던 진화 경력 25년 차 현장 관리자다.

산불이 시작된 지난 4일 오전, 119 신고를 확인한 김 팀장은 그때부터 “불이 오래 갈 것 같다”고 직감했다. 진화 헬기에 달린 카메라 영상 속 거대한 불길이 넘실거렸다. 발화 3시간 만에 국가위기경보 ‘심각’ 단계가 발령되며 전국 10개 관리소의 대원들이 즉각 소집됐다.

“산림헬기과장에게 왜 이렇게 우리를 늦게 불렀냐 했더니 그게 바로 부른 거라고 했다. 그만큼 급속히 확산된 거다. 장난 아니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김 팀장은 곧바로 대원들을 현장에 투입했다. 지형에 따라 비교적 접근이 쉬운 곳은 걸어서, 산세가 험한 곳은 헬기에서 레펠을 타고 진입했다. 대원들은 계곡이나 소방차에서 물을 끌어오거나 20㎏짜리 등짐펌프를 매고 물을 뿌려댔다.

발화 초반 화세를 잡기 위해 주간부터 야간까지 많게는 15시간씩 작업했다. 이들을 이끄는 김 팀장도 새벽에 나와 다시 새벽에 들어가는 일상이 반복됐다. 급박한 상황이 이어지며 김 팀장을 포함해 대선 투표를 포기한 대원들도 있다.

“이번 산불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SNS 단체 대화방이 5개다. 새벽 1시쯤 숙소에 들어온 뒤에도 끊임없이 대화방 알림이 울리고 전화가 왔다. 밤에도 현장에 사람들이 있다 보니 상황이 계속 플레이되더라.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는 사명감으로 버텼다.”

불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이어지는 강행군에 대원들이 지쳐갔다. 열을 받아 폭발하거나 굴러떨어지는 돌에 맞아 부상을 입는 사례도 생겨났다. 캄캄한 산세 속 작업엔 위험 요소가 산재한다는 게 김 팀장의 설명이다.

“밤샘 진화가 끝난 후엔 팀원들과 아픈 데는 없는지 건강을 체크했다. 야간 투입이 안전성과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판단하에 후반부엔 주간에 들어가서 진화를 했다.”

총력을 기울인 결과 노송 8만여 그루가 밀집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한때 화선이 금강송 핵심지로부터 300m 거리까지 접근했지만 공중진화대를 포함한 진화인력과 장비의 물대포가 불씨를 꺼뜨렸다.

8일 간의 방어 끝에 진화율은 92%에 다다랐다. 불기운이 남아 있는 8%는 인력 접근이 어려운 응봉산 지역이었다. 어느때보다도 반가운 봄비가 13일 역대급 산불의 마침표를 찍었다.

“토요일 저녁 강수량이 5㎜ 미만이라는 예보를 들었을 땐 실망이 컸는데 막상 비가 많이 내려 다행이었다. 불이 꺼졌을 땐 기분이 날아갈 정도로 좋아 일부러 비를 맞고 다녔다. 우산 쓴 사람이 있으면 뺏을 정도였다.”

가정을 떠나온지 한달 째, 완진 이후에도 김 팀장은 서류 작업 등 뒷정리를 하느라 곧장 아내와 자녀가 있는 안동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는 ‘벚꽃 필 때부터 아카시아가 필 때’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며 국민들에게 위험 행위 자제를 당부했다.

“5월 중순까지 봄철 산불기간이라 긴장의 끈을 풀 수 없다. 비가 와도 장맛비가 아닌 이상 바람이 불면 산불이 금방 나기도 한다. 이번 산불로 울창한 숲이 소실됐는데 논밭 태우기를 자제하고 산불 예방에 관심을 기울여줬으면 좋겠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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