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채무자, 양도담보 처분해도 배임 아냐”…판례 변경

  • 뉴시스
  • 입력 2020년 2월 20일 15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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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판례, 양도담보 3자 처분시 배임죄 성립
대법 전원합의체, 판례 변경…"배임 주체 안돼"
주식의 경우도 동일하게 적용…"엄격한 해석"

채무자가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물을 제공한 뒤 이를 처분했다고 하더라도 배임죄 성립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배임죄 성립을 인정한 기존 판례를 변경한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골재 도소매 업체 운영자 권모씨의 배임 등 혐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10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창원지법으로 돌려보냈다.

권씨는 지난 2014년 10월 거래처가 부도가 나 채권 회수가 어려워지면서 지난 2015년 말부터 회사 운영이 어려워졌다. 이에 권씨는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1억5000만원을 대출받으면서 골재 생산 기기인 ‘크라샤’를 양도담보(채권자에 담보물 소유권을 이전)로 제공하기로 했다.

이후 권씨는 크라샤 일부를 매각했고, 수사기관은 권씨가 중소기업은행의 담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도록 크라샤를 성실히 보관·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위반했다며 배임 혐의를 적용, 그를 재판에 넘겼다.

원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권씨에 대한 배임 혐의가 성립된다고 인정해 유죄 판단을 내렸다. 이후 상고가 이뤄졌고, 대법원은 배임죄 성립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로 회부했다.

형법상 횡령·배임죄는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가 그 임무에 위배하는 행위로써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해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에 성립된다. 그간 법원은 채무자가 양도담보물에 대해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의 지위에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동산(부동산 이외 물건)을 채권자에게 양도담보로 제공하더라도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담보물을 제3자에게 처분하더라도 배임죄는 성립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지위에 있다고 하려면 통상 계약에서의 이익 대립 관계를 넘어서 그들 사이의 신임 관계에 기초해 타인의 재산을 보호·관리해야 한다고 봤다. 채무자가 금전 채무를 담보하기 위해 동산을 제공함으로써 유지·보전 등의 의무를 부담하게 됐더라도, 배임죄의 주체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양도담보 설정 계약에 따른 채무자의 부담 의무는 담보 목적의 달성, 즉 채무 불이행시 담보권 실행을 통한 채권 실현이라고 지적했다. 계약 당사자 간의 관계가 여전히 금전 채권 실현 내지 채무 변제에 있다면 이를 이행하는 것은 본인의 사무에 관한 것이지,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배임죄의 행위 주체인 ‘타인의 사무를 처리하는 자’를 사무의 본질에 입각해 엄격하게 제한 해석한 것”이라며 “이 법리는 주식을 양도담보로 제공한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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