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석무, ‘다산 지우기’ 남양주시에 일침 “세상이 불러주는 호 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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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4월 19일 07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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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이사장 “다산을 다산으로 불러야…바꿀 이유 없어”
조광한 시장 “정약용 생전에 즐겨 쓰던 호 아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뉴스1DB) © News1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뉴스1DB) © News1
“다산을 다산이라 부르지 않는 상황이 안타깝다.” 평생을 다산 선생 연구에 헌신한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 선생의 ‘다산’이라는 호를 지우려는 남양주시정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박 이사장은 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한국학술진흥재단, 518기념문화재단 이사장, 단국대학교 이사장, 한국고전번역원장, 단국대 석좌교수 및 다산연구소 이사장을 지내고 있다.

1971년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취득하면서 다시 다산 연구에 집중했으며, 다산 연구서 10권 이상을 저술하는 등 다산 연구에 평생을 쏟아온 권위자다.

남양주시는 민선7기 조광한 시장이 들어서면서 ‘다산’ 지우기 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일례로 32년 전통의 ‘다산문화제’를 33회째를 맞는 올해 ‘정약용문화제’로 전격 변경하고, 정약용 선생의 호를 ‘다산’보다는 ‘열수’ 또는 ‘사암’으로 부르자고 주장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박석무(77)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다산을 다산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일침했다.

박 이사장은 18일 뉴스1과의 인터뷰를 통해 “다산(茶山)‘이라고 사용했을 때 큰 문제가 발견됐다면 모르되 새롭게 바꿀 마땅한 이유가 없는데 그 분(조광한 시장)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면서 “얼핏 듣기로 (조 시장은) 다산 선생이 강진에서 18년 동안 유배로 힘들었기 때문에 고통스러웠던 시절의 지어졌던 호를 다산 선생 본인이 싫어했을 거라고 여긴다고 들었다”고 설명했다.

박 이사장은 “다산 선생이 수많은 저서를 저술하고 남긴 보금자리가 다산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호도 다산이다. 이러한 다산을 꺼리거나 새로운 호로 대체할 이유가 없다”고 견해를 밝혔다.

다산(茶山)은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 동안 머물렀던 전남 강진군 귤동마을 다산초당의 뒷산으로, 생차가 많이 나는 산이라고 한다. 선생은 이곳에 머물면서 다산이라는 호를 썼다. 선생의 형인 정약전은 흑산도에 머물면서 ’현산‘이라는 호를 썼고, 서로를 ’현산‘과 ’다산‘이라는 호로 불렀다고 한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열수 정약용을 생각하다’는 안내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남양주시) © 뉴스1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열수 정약용을 생각하다’는 안내문 앞에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남양주시) © 뉴스1
조 시장은 현재 ’열수(洌水)‘, ’사암(俟菴)‘, ’정약용‘, ’Think J‘ 등을 혼재해서 다산 선생을 지칭하고 있다. 취임 후 ’다산아트홀‘을 ’사암아트홀‘로 별다른 설명 없이 간판을 교체했다가 주민들의 집단항의를 받고 ’다산아트홀‘로 원상복구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다산아트홀이라는 명칭은 ’시민공모와 선호도조사‘를 거쳐서 결정된 이름이다.

시청사 내에는 ’열수 정약용을 생각하다‘는 문장을 전시했고, 지난 1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는 ’사암 정약용‘이라고 지칭했다. 또 다산1동, 2동을 각각 사암동, 열수동으로 바꾸려는 계획도 세운 바 있는데다 지난달 다산문화제를 정약용문화제로 변경했다. 이에 따라 시는 ’다산 정약용 선생‘ 대신 ’정약용 선생‘, ’다산유적지‘ 대신 ’정약용유적지‘, ’다산대상‘ 대신 ’정약용대상‘으로 바꿀 예정이다. 다산유적지 일대 간판도 모두 철거하고 정약용유적지로 바꾼다.

조 시장은 지난 17일 언론에 공개한 동영상 인터뷰를 통해 “전문가들의 고증을 들어보면 정약용 선생이 생전에 즐겨 썼던 호는 ’다산‘이 아니라 ’열수‘가 맞다는 견해다”면서 “다산이 정말로 당신(정약용)이 원하던 호였던가 의구심이 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러한 의구심을 떨쳐버리는 방편으로 본명을 불러서 정약용으로 부르는 것이 선생의 뜻에 부합된다. 그 동안 정약용문화제가 다소 일회성 행사로 끝났기 때문에 대학자를 기리고, 그 학자가 추구했던 사회적 가치를 반영하는 데 미흡했다고 생각한다”면서 “학술적 측면과 시대적 측면, 학자로서의 면모를 다양하게 기려볼 수 있도록 다채롭게 문화제를 치를 수 있도록, 정약용 선생의 정신에도 맞고 또 남양주라는 지역정신에도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앞으로 정약용문화제를 남양주의 대표적인 문화축제로 만들어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열수‘라는 명칭은 정약용 선생에게만 한정해서 부를 수 없다고 설명했다. 아직 학계에서 ’열수‘가 ’한강‘인지 ’대동강‘인지 정확히 판명나지 않은 상황이다. 다산은 조안면 정씨 일가를 불러서 한강이 열수라고 확정 짓고 얘기한 바 있지만, 다산 선생은 생전에 ’조안면 일대 정씨는 모두 열수로 하자‘고 얘기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지역 정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열수‘라는 호를 쓸 수 있다고 한다.

박 이사장은 ’사암‘이라는 호에 대해 다산 선생이 ’진짜 내 호다‘고 지칭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지만 “호는 불러줘야 호다. 안 부르면 호가 아니다. 세상에서 불러주는 호가 다산이다”고 다산 사용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퇴계 이황, 율곡 이이 선생과 마찬가지로 다산 선생도 지명을 따서 호로 지었고 형인 정약전이 자신의 호를 ’현산‘으로, 동생은 ’다산‘으로 생전에 불렀으므로 정약용 선생이 ’다산‘이라는 호를 꺼렸다는 것은 낭설이라는 게 박 이사장의 설명이다.

옛 사람들이 호를 사용한 이유는 자신보다 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리사회에서 자식이 조부모와 부모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경우는 현대에도 없다.

때문에 박 이사장은 다산 선생의 실명을 그대로 부르는 ’정약용문화제‘라고 명칭을 바꾼 것에 대해 “몹시 놀랐다”고 했다. 200년 동안 세상에 정착된 ’다산‘을 굳이 바꾸기에는 남양주시에서 내세운 이유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다산 선생의 고향땅은 조선시대에는 ’광주‘였고 후에 ’양주‘로 편입됐다. ’남양주‘라는 명칭은 1980년도에 생겼다. 박 이사장은 ’현재 남양주시의 행정대로라면 이러한 부분을 다 문제 삼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남양주=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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