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부동 공무원? 인센티브가 해결책”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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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설제 자동살포기 개발-상품화… 김홍중 서울시 노원구 주무관

김홍중 서울 노원구 주무관이 제설제 자동살포기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김홍중 서울 노원구 주무관이 제설제 자동살포기를 시연해 보이고 있다. 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출근할 때 인도에 뿌린 제설제가 퇴근길에도 그대로 남아 있더라고요. 보기도 안 좋고 낭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눈이 그쳐도 거리에 남은 제설제. 보통 공무원이라면 그러려니 했을 일인데 김홍중 노원구 토목과 주무관(49)은 집에서 구청까지 걸어서 30분 남짓한 그 거리에 버려진 제설제가 마음에 걸렸다. 제설 업무 담당이기에 더더욱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2016년 1월이었다. 그는 제설제 살포기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2년여 노력 끝에 2017년 12월 자동살포기를 완성해 이듬해 4월 특허를 받았다. 서울시 창의상 최우수상, 행정안전부 중앙우수제안 장려상을 탔다. 특허 덕분에 벌어들인 부수입은 800만 원가량이다.

전국 어디서나 하는 제설 작업이지만 방식은 오랫동안 바뀐 게 없었다. 주택가 언덕과 골목길처럼 사람들이 다니는 길의 제설 작업은 제설제를 삽으로 떠서 좌우로 흔들며 뿌리는 방식이다. 구멍을 뚫은 제설제 포대를 끌고 다녀 흘리기도 한다. 수작업이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린다. 제때 제설제가 뿌려지지 않은 일이 많은 이유다. 뿌릴 때 날리는 제설제 분진이 옷에 묻거나 호흡기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도 골치다.

이전에도 이런 문제를 인식한 공무원은 있었겠지만 행동으로 옮기기는 쉽지 않았을 터. 김 주무관도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처음 소형 카트에 봉을 두 개 세우고 그 위에 제설제 포대를 얹는 방식을 생각했다. 그러나 봉에 얹은 포대가 잘 뚫어지지 않았고 뚫려도 주르륵 흐르기만 했다. 약 1년간 시행착오를 거친 뒤 칼날 다섯 개와 모터로 구동하는 살포기를 구상했다. 날이 회전하며 포대를 찢어 밑으로 흐르는 제설제를 사방으로 날리는 방식이었다. 퇴근 후 설계도를 그리고 주말에는 전자상가를 찾아 모터와 배터리 조합을 문의했다. 그렇게 제품을 완성했다.

자동살포기는 관가의 입소문을 탔다. 지난해 기초단체 및 공공기관 31곳에서 구매 문의를 해왔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이 조달청 물품 등록을 추진해 지난달 등록됐다. 판매 금액의 1.5%는 특허권이 이전된 노원구에, 1.5%는 김 주무관에게 돌아간다.

대학에서 토목을 전공하고 1995년 9급 공채로 서울시에 들어온 김 주무관은 수시로 정책을 제안해 ‘제안맨’으로 통한다. 자치구마다 정책 제안을 독려하지만 실제 제안하는 사람은 소수다. 노원구는 한 달에 10개 안팎의 제안이 올라오지만 80%는 단순 건의다. 몇 안 되는 정책 제안도 담당 부서에서 수용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다. 김 주무관은 “제안을 받아들이면 새로운 일을 시작해야 하니 아무래도 귀찮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했다. 가급적 일을 벌이지 않으려는 공직사회의 관습인 셈이다.

다른 구 공무원인 그의 아내는 남편이 조직에서 미운털이나 박히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래도 김 주무관은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건 공직자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대다수 공무원의 생각은 김 주무관과 같지 않다. 그는 “혁신에 대한 인센티브가 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공익을 위해 뭔가를 발명해도 승진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괜한 일 한다고 눈총받기 십상이다.

“공무원이 자발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시스템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처럼 능력 출중한 젊은이들이 공무원이 되는 때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힘줘 말하는 김 주무관의 눈이 빛났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공무원#인센티브가 해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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