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파속 시설 떠나 거리 나선 노숙자들 “추워도 이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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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년 12월 30일 10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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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 중 1명은 거리 고집…용산 텐트촌도 철거 위기
재활의지 노숙인도 많아…“온정보단 근본대책 절실”

서울역 지하도 안 노숙인들. © News1
서울역 지하도 안 노숙인들. © News1
아침 기온이 영하 14.4도까지 내려가는 등 한파가 절정에 달했던 28일 아침. 서울 영등포역 인근의 노숙인들 너댓명이 몸을 웅크린 채 잠을 청하고 있다. 박스를 몇겹으로 깔고 담요를 여러겹 덮어도 체감온도가 20도에 달하는 추위를 이겨내긴 어렵다. 일부 노숙인들은 기차역 대합실로 들어가 몸을 녹인다.

이곳에서 5년 넘게 생활하고 있다는 노숙인 김모씨(58)는 겨울이 가장 견디기 힘든시기라고 말한다. 김씨는 “밤 10시~11시까지는 대합실이나 지하상가에서 몸을 녹일 수 있지만 그쪽이 문이 닫히면 결국 나와서 자야한다”면서 “한겨울에는 누워있어도 잠을 자기는 어렵다. 새벽에 대합실 문이 열리길 기다릴 뿐”이라고 말했다.

겨울은 노숙인들에게는 가장 두려운 계절이다. 칼바람이 부는 혹한의 날씨에 바깥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생명을 위협받는 일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소병훈 의원(더불어민주당)이 서울시로부터 제출받은 노숙인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서울시가 파악하고 있는 노숙인은 3193명이며, 이중 거리노숙을 택한 이들은 290명으로 전체의 9.1% 수준이다.

여름과 비교하면 적은 편이지만, 한겨울에도 거리노숙을 고집하는 노숙인이 적지 않다. 쉼터 등의 시설을 거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단체생활에 대한 거부감이다.

서울역 인근에서 거리 노숙을 하고 있는 임모씨(66)는 “자유롭게 생활하고 싶어서 나온 건데 노숙인시설에 들어가면 또 그 안에 갇히게 된다. 이 추위에 밖에서 자는 게 쉽지 않긴 하지만 그래도 이 편이 낫다”고 말했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상담사 김모씨도 “날씨가 추워진다고 할 때마다 걱정이 된다. 밖에서 주무시는 분들에게 겨울만이라도 들어오시라고 권해봐도 쉽게 고집을 꺾지 않으시더라”고 했다.

겨울에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많이 발생한다. 노숙인들간의 자리다툼부터 방한용품 등 절도 시비도 자주 발생하고, 간혹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해 위급한 상황에 놓이는 노숙인도 있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밤마다 노숙인 생필품과 식료품 등을 나눠주며 지원활동을 하고 있는 교인 주모씨는 “물품을 나눠주면 어디서 오셨는지 순식간에 몰려든다. 그 와중에 본인 것을 훔쳐갔다며 멱살을 잡고 싸우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보니 노숙인들에 대한 시선은 차가울 수밖에 없다. 삶에 대한 의욕없이 누군가에게 기대어 연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각자의 사정은 있다. 서울역 인근에서 3년간 노숙을 하다 자활 근로 등을 통해 돈을 모아 쪽방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오모씨(49)는 “이 생활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오씨는 “내 경우엔 아는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고 순식간에 모든것을 잃으면서 그야말로 ‘떠밀려’ 나왔다. 또 다른 사람은 사업을 하다 실패한 사람도 있고, 도박을 하다 재산을 탕진한 사람도 있다”면서 “돈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세상 아닌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면 정신이 나가 버리고 포기하게 된다. 내 경우에도 그랬고, 3년 동안 그렇게 살았다”고 설명했다.

영등포역에서 자활근로를 하고 있는 김모씨(50)도 “마흔 하나에 사업에 실패하고 죽으려고까지 했다. 한동안 노숙을 하다가 지금은 다시 살아보려고 한다”면서 “이걸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해도 나처럼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있는 노숙인도 많다”고 말했다.

노숙인 정모씨(55)도 “3년 정도 노숙생활했는데 그래도 조금만 더 견뎌서 임대 주택에 들어가려고 한다. 1년만 더 모으면 된다”며 의지를 보였다.

더 나아가 용산역 뒤편에는 노숙인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자활공간’인 ‘텐트촌’이 있다. 20명 가량이 몰려사는 이곳은 노숙인 시설보다 자유로우면서도 함께 모여 살며 다시금 희망을 키운다.

이곳에서 거주하며 돈을 모았다는 김모씨(68)는 “나처럼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안정적으로 머물 공간이 있다는 자체가 좋다”면서 “그저 주는대로 받기보다는 우리 나름대로 살 방법을 찾아봐야 정말 ‘자활’이 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다만 이곳 ‘텐트촌’은 최근 용산구로부터 자진철거 요청을 받은 상황이다. 용산구 관계자는 “이 부지가 철도시설관리공단의 소유인데다 주변 주민 민원까지 들어온다”면서 “추운날씨에 그대로 내쫓을 수도 없어 곤란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일선에서 노숙인들을 관리하고 지원해 온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이수범 실장은 “노숙인이 거리생활을 벗어나 정상적이고 일상적인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트라우마극복센터나 심리치유센터 등을 신설할 필요해 이들이 다시 시민으로 복귀할 수 있게끔 의지를 심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근무하는 일선 경찰도 “예전에 비해 노숙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 자체가 낮아졌다”면서 “근시안적인 정책들보다는 근본적으로 노숙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정책들이 나오면 좋겠다. 노숙인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서 출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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