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량대첩 해역서 건져올린 ‘조선수군의 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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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수중발굴 성과 담은 보고서 발간
5년간 인양한 980여점 유물 소개
근접거리서 왜군 제압한 해전무기 ‘소소승자총통’ 실체 처음 확인
내년부터 6차 수중조사 진행

명량대첩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근접거리에 있던 왜군을 격파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명량대첩 당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근접거리에 있던 왜군을 격파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소소승자총통.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정유재란 당시 왜군을 대파해 풍전등화에 놓인 나라를 구한 명량대첩을 이끈 조선수군의 흔적들이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하나씩 드러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명량대첩로 해역 13만7000m² 중 2만3390m²를 5차례 수중 발굴해 각종 유물 980여 점을 찾아냈다고 5일 밝혔다. 이들 유물 가운데 명량대첩에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유물은 총 12점이다.

명량대첩은 정유재란(1597∼1598년)의 승패를 가른 해전이다. 명량대첩은 1597년 9월 16일 전남 진도와 해남 사이 울돌목에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판옥선 12척으로 왜군 선박 133척을 격파한 전투다. 당시 조선수군은 현자총통과 각종 화전을 쏘며 왜군을 맹렬하게 공격했다.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조선수군의 혼이 살아나고 있다. 2012년 발굴된 소소승자총통 3점은 명량해전 당시 조선수군이 사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길이 58cm, 두께 1.4cm인 소소승자총통은 1588년 전라좌수영에 소속된 장인 윤덕영이 제작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소소승자총통은 조선수군이 근접거리에 있는 왜군을 제압하던 해전무기다. 노경정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수중발굴조사를 통해 문헌에도 없던 소소승자총통의 실체를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2013년과 2016년 발굴된 직경 8∼9cm 크기 돌 포탄 6점은 조선수군이 대포인 현자, 지자총통 훈련용으로 쓰거나 철포탄을 소진했을 때 대체 사용했다. 또 2013년과 2016년 발굴된 노기 2점은 서양식 석궁과 비슷한 무기였던 쇠뇌의 방아쇠 부분이다. 쇠뇌는 시위를 걸고 방아쇠를 당겨 화살을 쏘는 무기다.

수중발굴조사가 이뤄지는 명량대첩로 해역은 조류가 빠르게 흘러 선박이 운항하기 힘든 곳이다. 울돌목에서 남동쪽으로 4km 떨어져 있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2011년 이곳의 유물을 불법 매매하려던 도굴범을 검거하면서 수중발굴조사를 시작했다.

명량대첩로 해역은 여러 시대의 유물이 흩어져 있다. 발굴된 유물의 80%는 고려청자다. 고려청자 대부분은 12∼13세기 강진이나 해남 등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형청자나 청자잔과 같은 수준 높은 청자들은 강진 관요에서 제작된 것이다.

발굴된 청자를 실은 배는 강진에서 출항해 고려 시대 해양운송로를 따라 개경으로 향하던 중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침몰된 것으로 보인다. 일부 해역에서는 나무로 만든 닻을 물속에 가라앉히기 위해 매다는 닻돌이 많이 발견됐다. 명량대첩로 해역에는 닻돌 50여 점이 가로 200m, 세로 200m 해역에 있었다. 이는 옛날 배들이 쉬어가는 정박지나 피항지 역할을 했다는 증거다. 일부는 중국식 닻돌로 확인돼 명량대첩로 해역이 국제교류를 위한 해상통로였다는 것을 입증해준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발굴조사로 인양한 유물 980여 점을 소개하는 보고서 1, 2권을 발간했다. 이귀영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장은 “2019년부터 명량대첩로 해역에서 6차 수중발굴조사가 진행된다”며 “추가조사를 통해 판옥선 등 당시 전선(戰船)의 실체도 확인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정유재란#명량대첩#조선수군#소소승자총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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