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간 노숙인 등에 봉사…조각상 선 ‘파란눈 사제’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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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의 집’ 운영 伊출신 김하종 신부

1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김하종 신부(오른쪽)가 본인 모습을 본떠 조각상을 만든 이환권 조각가의 손을 맞잡고 있다. 18일
 세계 이주자의 날을 맞아 이 조각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이날부터 22일까지 전시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7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김하종 신부(오른쪽)가 본인 모습을 본떠 조각상을 만든 이환권 조각가의 손을 맞잡고 있다. 18일 세계 이주자의 날을 맞아 이 조각가의 재능기부로 만들어진 조각상은 이날부터 22일까지 전시된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14일 낮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 안나의 집. 1층 급식소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 김하종 신부(60)는 영락없는 ‘한국인 아저씨’였다. 회색 등산바지에 두꺼운 등산화를 신고 고등어조림 국물에 밥을 비벼 먹는 그의 모습에선 한국 생활 28년차의 관록이 느껴졌다. 고향 음식이 그립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한국에 온 이후 피자나 파스타는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2년 전 귀화해 올해 환갑을 맞은 그는 세 명의 노숙인과 함께 환갑잔치를 치렀다.

한국에서 26년간 노숙인, 홀몸노인 등 사회 약자를 위해 봉사해온 김 신부가 조각가 이환권의 재능기부로 10m 높이 조각상으로 재탄생했다. 17일 공개된 이 조각상은 22일까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 전시된다. 18일 세계 이주자의 날을 맞아 유엔 국제이주기구(IOM) 한국대표부와 서울시가 함께 진행한 ‘당신의 이웃은 누구입니까(My Migrant Neighbor)’ 캠페인의 일환이다. “조각상이 그렇게 클 줄 몰랐다.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친 김 신부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이주자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며 아시아에 관심이 생겼고, 선교사의 도움 없이 스스로 천주교를 발전시킨 독특한 역사에 한국이 궁금해졌다. 예수님 사랑과 빈자 사랑을 실천하겠다는 마음으로 1990년 한국에 온 그는 ‘빈첸시오 보르도’에서 김하종으로 개명했다. 김대건 신부를 존경해 김씨 성을 따랐고, 하종은 하느님의 종이라는 의미였다. 타지 생활은 쉽지 않았다. 1992년 빈자가 많던 성남시에 자리를 잡고 홀몸노인들을 위한 급식 봉사를 시작했을 당시 외국인을 처음 본 주민들은 “왜 한국에 왔느냐”며 의심 섞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을 내 나라처럼 대하는 그의 모습에 의심의 눈초리는 점차 사라졌다.

1997년 말 외환위기로 대량 실직 사태가 벌어지자 길거리에 노숙인이 넘쳐났다. 그는 “대학생 때 로마 기차역의 노숙인들을 돕는 봉사를 했다. 그때 경험을 살려 1998년 노숙인 급식소인 안나의 집을 열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 난독증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2002년엔 난독증 홍보 활동도 시작했다. 본인이 어릴 적 난독증 장애를 겪어 100명에 5명의 아이는 난독증을 겪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여 년간 안나의 집에서 도움을 받은 노숙인은 약 190만 명. 지금도 하루에 약 550명의 노숙인이 안나의 집에서 저녁을 해결한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곳’이라는 설립 취지답게 이곳을 거친 뒤 자립에 성공한 노숙인들도 적지 않다. 명절이면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왔다”며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김 신부의 선행이 국내 이주자 사회에 알려지면서 안나의 집을 찾는 외국인 봉사자들도 많아졌다. 그는 “추석, 설날 등 명절에 급식소를 운영할 수 있는 건 외국인 봉사자들 덕분”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심지어 김 신부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비행기를 타고 낯선 땅 한국에 건너온 해외 봉사자도 있다. 이탈리아에서 20년간 변호사로 일하며 청소년을 도왔던 마르티나 씨(50·여)는 더 많은 청소년을 돕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올해 10월 안나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김 신부는 최근 전 세계적인 이주자 배척 흐름에 안타까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이탈리아가 멋진 나라가 된 이유는 스페인, 프랑스, 아랍국 등 다양한 나라가 지배했기 때문”이라며 “외국인은 위협이 아니라, 다른 점을 배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기회”라고 여러 번 힘주어 말했다. 또한 한국에 오는 이주자들도 “감사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새로운 나라에서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안나의집#김하종신부#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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