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남동 뜨자 떠나는 기사식당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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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래유산’ 선정 기사식당 거리
주차난 심해져 택시운전사들 기피… 손님 크게 줄었지만 임차료는 껑충
10곳 넘던 업소들 4곳으로 줄어

서울 마포구 동교로 ‘연남동 기사식당거리’의 식당 앞 도로는 사선 형태의 식당 전용주차장으로 사용됐지만(위쪽 사진) 2015년 8월부터 누구나 돈을 내면 주차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서울시 제공
서울 마포구 동교로 ‘연남동 기사식당거리’의 식당 앞 도로는 사선 형태의 식당 전용주차장으로 사용됐지만(위쪽 사진) 2015년 8월부터 누구나 돈을 내면 주차할 수 있는 공영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서울시 제공
20여 년 전부터 서울 마포구 연남동의 식당 ‘조박사복해장국’은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푸짐한 복맑은탕(지리)을 먹을 수 있어 택시운전사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3, 4년 전만 해도 하루에 택시운전사만 100명 가까이 찾는 등 문전성시였다. 하지만 30일 이 식당은 문을 닫았다. 이날 만난 가게 주인 전경애 씨(52·여)는 “지금은 택시운전사가 하루 5명도 방문하지 않는다”며 “더 이상 여기서 장사하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조박사복해장국이 있는 곳은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로 불린다. 동교로 연남파출소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약 400m 구간이다.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순댓국집을 시작으로 저렴하고 맛도 좋은 식당들이 들어섰다. 자연스레 주머니 사정이 녹록지 않은 택시운전사들이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서울 곳곳의 기사식당 밀집지역 중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올 1월 “30년 넘도록 시간이 부족한 택시운전사들이 식사하면서 짧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며 이 거리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한때 10곳이 넘던 이 거리 기사식당은 4곳으로 줄어들었다. 수십 년 영업한 껍데기집, 생선구이집 등은 최근 3년간 장사를 접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 남은 식당들도 언제까지 장사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한 식당 주인은 “예전에 비해 손님이 4분의 1까지 줄어들었다”며 “현재 남아 있는 기사식당 모두 사정이 비슷하다”라고 토로했다.

이처럼 서울의 대표적 기사식당거리에서 기사식당이 밀려나는 배경에는 치솟는 임차료와 함께 주차 문제가 있다. 2015년 6월 기사식당거리 바로 옆의 양화로21길, 23길 사이에 경의선숲길공원이 들어섰다. 그전까지 기사식당들은 상점 앞 공간을 한 면당 하루 3만5000원씩 마포구 시설관리공단에 지불하고 전용 주차장으로 썼다. 주차 대수를 늘리기 위해 사선 형태로 주차하도록 했다.

공원이 완공되고 사람이 몰려들면서 한적하던 동네가 ‘뜨는 상권’이 됐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다는 민원이 제기됐고 마포구는 그해 8월부터 기사식당거리 양쪽을 평행주차 형태의 공영주차장으로 바꿨다. 돈만 내면 누구나 빈 공간에 주차할 수 있게 되자 기사식당들로선 핵심 인프라인 주차공간을 갑자기 잃어버린 셈이 됐다.

당장 차 댈 곳이 없어지자 식당을 찾는 택시가 급격히 줄었다. 전 씨는 “그래도 서너 바퀴 돌면서 겨우 차를 세우고 오는 운전사들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곧 돈인데 쉽지 않은 노릇”이라며 “그렇다고 이 동네를 찾는 20대들이 기사식당에 오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다른 식당 주인 이모 씨도 “처음에는 공원이 조성되면 유동인구가 늘어 장사가 더 잘되지 않겠느냐고 기대했다”며 “하지만 다들 우리 가게 앞에 차를 대놓고는 공원이나 다른 골목의 술집으로 간다”고 하소연했다.

박리다매 방식의 기사식당은 손님이 주는 데다 상권 활성화로 치솟는 임차료를 부담하기가 어려워졌다. 서울 주요 상권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연구한 김상일 서울연구원 도시공간연구실장은 “현재 영업하는 기사식당 업주들의 이주 계획을 감안하면 30년 전통의 연남동 기사식당거리는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 보인다”고 내다봤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기사식당#서울미래유산#주차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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