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견과 한가족 된 소외아동 “꿈이 생겼어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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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동물매개활동 사업 호평
2년간 38개 기관 아동 500여 명… 동물과의 만남 통해 자존감 높아져
밥 챙겨주고 함께 산책… 아픔 나눠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드림빌 보육원에 입양된 유기견 ‘드림이’를 비슷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위쪽 
사진). 동물매개활동에 참여하는 유기견들은 아동, 청소년들과 다양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위안을 얻는다. 
강남드림빌·반려동물포털 펫찌 제공
지난해 11월 서울 강남드림빌 보육원에 입양된 유기견 ‘드림이’를 비슷한 마음의 상처를 가진 아이들이 어루만져 주고 있다(위쪽 사진). 동물매개활동에 참여하는 유기견들은 아동, 청소년들과 다양한 시간을 보내며 서로 마음을 주고받고 위안을 얻는다. 강남드림빌·반려동물포털 펫찌 제공

“드림아, 밥 먹자!”

올해 2학년이 된 여고생 유정(가명)이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1년생 수컷 시베리안 허스키 잡종견 드림이의 밥부터 챙긴다. 밥그릇을 씻어 사료를 채워주고 마실 물도 새로 갈고, 분변까지 치워준 뒤에야 자기 방으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 놓는다. 드림이도 멀리서 유정이의 기척이라도 느끼면 그때부터 온몸을 격하게 흔들어대며 반가워한다. 다른 ‘가족들’이 있지만 드림이의 산책과 샤워 역시 대부분 유정이의 몫이다.

드림이를 대할 때면 더없이 표정이 밝아지는 유정이의 집은 서울 강남구의 보육원 ‘강남드림빌’이다. 아빠 얼굴은 모른다. 엄마 손에서 초등학생 때까지 컸다. 더 이상 유정이를 키울 수 없는 형편이 되자 엄마는 5년 전 이곳으로 유정이를 보냈다.

드림이는 지난해 8월 경기 김포시의 길가에서 비쩍 마른 모습으로 발견된 유기견이다. 정밀 검진 결과 치명적인 심장사상충 말기 상태여서 더 살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웠다. 드림이를 치료한 동물병원 관계자는 “주인이 키우려다 치료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니 그냥 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유정이와 드림이가 만난 건 서울시의 동물매개활동 사업을 통해서다. 동물매개활동은 아픔을 겪은 사람이 동물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정서적, 심리적인 안정을 추구하는 것이다. 미국에선 30여 년 전 심리치료에 동물을 활용하는 방법이 도입됐다. 2001년 9·11테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피해자와 구조대원들에게 자원봉사자가 데려온 1년생 강아지 ‘티그바’가 큰 위안을 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일본에서도 심신장애에 시달리던 마을 노인들의 재활을 이끌어내는 기적을 일으킨 유기견 ‘지로리’가 유명하다.

국내에선 2년 전 서울시가 처음 도입했다. 서울시는 2015년부터 지역아동센터와 보육원 같은 유관 시설을 대상으로 동물(개)과 아이들을 만나게 해주며 서로 어울리도록 했다. 관련 교육 45시간을 이수한 자원봉사자가 동물을 데려오면 아이들이 먹이를 주거나 털을 빗겨주고, 원반던지기 같은 놀이를 함께한다. 서울시는 지난해까지 2년간 38개 기관에 사는 아동과 청소년 5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같은 활동을 진행했다.

동물과 어울리면서 아이들이 자신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스스로를 더 존중하게 됐다. 신언표 서울시 동물보호과 주무관은 “동물은 아이들에게 단순한 즐거움 이상으로 심리적인 치유 효과가 있다”며 “자아 존중감이 낮고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이 동물과 교감하며 상대방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활동에 참여한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내가 다른 사람들처럼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문항에 ‘항상 그렇다’는 응답이 활동 전 35%에서 41%로 올라갔다.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3%에서 1%로 줄었다. ‘나는 대체적으로 실패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든다’는 문항에는 ‘대체로 그렇지 않다’는 응답이 19%에서 27%로 대폭 늘었고, ‘항상 그렇다’는 응답은 감소했다.

드림이는 입양으로까지 연결된 첫 사례다. 이은영 강남드림빌 원장은 “2015년부터 보니 아이들 성격이 밝아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일시적 활동으로 그치는 게 안타까웠다”며 입양한 배경을 설명했다. 마침 보육원에 큰 개를 키울 만한 마당도 있었다. 서울시 사업 총괄책임자인 박철 동물메디컬센터W 원장이 치료를 전담하기로 했다. 그 결과 지난해 11월 드림이는 한 가족이 됐다. 함께 입양한 강남이(비글)는 장기간 치료가 필요해 드림이만 남았다.

드림이를 만난 후 이곳 아이들의 삶도 바뀌었다. 사람들을 만나는 걸 두려워했던 유정이는 드림이와 인근 양재천을 산책하며 만난 견주들과 정기적인 모임을 갖고 스스럼없이 반려견에 대한 정보를 나눌 정도가 됐다. 동물 전문가라는 꿈도 생겼다. 앞서 고교를 졸업하면서 보육원을 나간 원생 2명도 동물들을 접하면서 ‘동물테크니션’(수의사 보조원)으로 진로를 정해 취업에 성공했다. 이 원장은 “사람을 가리지 않고 사랑을 주는 동물들이 이곳 아이들에겐 훌륭한 삶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유기견#소외아동#동물매개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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