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혹시… 강박장애 사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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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환자 10년새 60% 증가

 보통 “난 원래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한다. 위생관념이 철저해 자주 씻고, 청소도 철두철미하게 한다. 또 계좌나 메일 계정, 개인정보 등 많은 정보를 지키기 위해 비밀번호도 자주 바꾼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너무 자주 반복돼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긴다면? 일명 ‘선진국병’으로 통하는 국내 ‘강박장애’ 환자가 10년 사이 60%나 증가했다. 특히 20대가 가장 많다. 숨어있는 강박장애 환자는 50만 명이 넘고 향후 더욱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만의 독특한 습관이라고 웃어넘기는 당신. 주변인에게까지 불편을 초래한다면 한번쯤 강박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 불안한 청춘… 강박장애 25%가 20대 ▼


 30대 회사원 박경진 씨는 평소 자신이 꼼꼼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다. 매사에 일처리도 확실해 직장 동료들의 신망도 두터웠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실수하면 어떡하지”란 걱정이 커졌다. 이후 김 씨는 언젠가부터 문고리를 잡으면 오염된 물질이 손에 묻을 것 같다는 걱정이 커지기 시작했다. 누군가 문을 열 때를 기다렸다가 문을 통과할 정도로 증세가 악화돼 회사를 그만뒀다. 그는 병원에서 ‘강박장애’란 진단을 받았다.

  ‘선진국병’ ‘현대사회병’으로 불리는 강박장애 환자가 크게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진 사회적 환경이 주요 요인이라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 디지털사회병에 헬조선까지?… 10년간 60% 증가

 8일 동아일보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함께 2006∼2015년 최근 10년간 국내 강박장애 환자를 분석한 결과 2006년 1만5059명이던 환자 수는 2015년 2만4069명으로 60% 가까이 증가했다. ‘강박장애’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떤 특정한 사고나 행동을 떨쳐버리고 싶은데도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는 정신질환이다.

 환자는 특히 ‘20대’에 집중됐다. 20대 환자 수는 6110명(2015년 기준)으로 전체 환자의 약 25%나 됐다. 이어 30대(5074명), 40대(3981명), 10대(2949명), 50대(2723명) 순이었다. 지역별로는 대전 지역에 강박장애환자(인구 10만 명당 100명)가 가장 많았고, 대구(79명), 서울(59명), 세종(58명) 순이었다.

 강박장애는 크게 △더럽다고 만지지 않거나 자주 씻는 ‘오염강박’ △문단속 등 무언가 끊임없이 ‘확인하는 강박’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저장강박’ △강도 등 끔찍한 상황을 미리 ‘걱정하는 강박’ 등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옆에서 보면 독특하거나 웃어넘길 수 있지만 엄연한 질환이라고 전문의들은 지적한다. 방문 장소 변기 교체 공사, 해외순방 시 수도꼭지 교체 등 최근 논란이 된 박근혜 대통령의 행동 역시 ‘강박장애’에 가깝다고 보는 전문의들이 많다.

○ 잠재적 환자만 ‘50만 명’… 사회 복잡성 탓

 문제는 환자 자신이 ‘강박장애’라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난 단지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서 이상하다는 것을 먼저 알게 된다. 따라서 특정 분야에 대한 걱정이 지속적으로 침범하듯 나타나 불안감이 커지고, 이를 해소하는 행동(잦은 손 씻기, 확인, 청소 등)을 매일 한 시간 이상씩 해 일상에 지장을 준다면 강박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전문의들은 잠재적 강박장애 환자가 50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강박장애는 선천적 요인 등 복합적 원인으로 발병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환경적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홍진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예전에는 문단속 정도만 하면 됐지만 지금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이메일, 계좌 등의 각종 비밀번호를 외우고 확인할 것이 너무 많고 보이스피싱 등 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도 많다. 사회가 복잡할수록 구성원의 긴장이 증진되고 강박장애가 발현되기 쉽다”며 “특히 20대의 경우 입시, 취업, 경쟁 등 불안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밝혔다. 전명욱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사는 게 힘들고 미래가 불안한 헬조선 분위기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미국이나 유럽의 경우 국내총생산(GDP)과 비례해 강박장애 환자가 늘면서 사회적 문제로 거론된다.

 강박장애는 우울증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강박은 불안 때문에 생기고 계속 불안이 쌓이면 우울해지면서 자살충동이 커진다는 것. 치료는 강박 사고를 줄이는 약물치료와 손에 물감을 묻히고 참는 등 환자가 두려워하는 대상에 노출시키는 행동치료가 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강박장애#증가#20대#사회불안#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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