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학 재수? 독한 재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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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강 듣고 자습… 독서실 같은 학원
스마트폰-짧은 치마-액세서리 금지… 졸다 걸려 벌점 쌓이면 제적까지
죽도 든 쌤-CCTV 감시 아래 칸막이서 15시간… ‘독재학원’ 불려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독학재수학원 자습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오른쪽 유리창에는 벌점이 누적된 학생이 정학 조치됐음을 알리는 공고문이 여러 장 붙어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13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독학재수학원 자습실에서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 오른쪽 유리창에는 벌점이 누적된 학생이 정학 조치됐음을 알리는 공고문이 여러 장 붙어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서울 양천구 목동. 대로를 따라 학원 수십 개가 늘어서 있다. ‘독학재수’라고 적힌 간판만 20개가 넘는다. 독학재수학원은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자습하길 원하는 학생을 위한 곳이다. 외관은 독서실과 비슷하지만 학원이 학생의 공부 계획을 짜주고 생활 관리를 해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비용은 월 40만∼60만 원 선이다.

6년여 전 독학재수학원이 처음 생겼을 때는 칸막이 책상 30여 개를 둔 소형 학원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대성 종로 이투스 메가스터디 등 유명 학원들까지 가세해 200석 넘는 대형 학원이 등장했다. 현재 독학재수학원은 전국에 360여 개가 있다. 서울, 경기에만 250여 개가 강남구 대치동, 목동 등 학원가에 몰려 있다. 한 대형 학원 대표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가 EBS 교재에서 70%가량 출제되고 수시와 학생부종합전형 등 입시 전형이 다양해졌다”며 “이 때문에 정시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짜인 재수종합반이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독학학원에 몰린다”고 했다.

○ 재수생 효주의 하루

재수생 장효주(가명·19·여) 씨가 다니는 목동의 독학재수학원은 6층짜리 건물의 네 번째 층 전체를 쓰고 있다. 그는 가로 90cm, 세로 60cm 칸막이 책상에서 하루 15시간 정도 공부한다. 오전 6시 30분 등원해서 입실 카드를 태그해 어머니에게 입실 문자메시지가 발송되게 하는 게 하루의 시작이다. 휴대전화를 사물함에 넣고 자물쇠를 채우면 곧바로 ‘공부 시작’.

남녀 자습실 외에도 입시컨설팅, 질의응답을 위한 작은 공부방이 여럿이다. 졸리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학생이 앉거나 서서 공부할 수 있도록 보조 자습실도 3개 있다. ‘지켜보고 있다’는 메시지를 주기 위한 듯 벽은 대부분 유리다. 폐쇄회로(CC)TV는 20개가 넘는다. 죽도를 들고 자습실 순찰을 다니는 ‘쌤’(선생님)은 졸고 있는 애들에게 “졸리면 서서 공부해라” “아픈 것도 습관이다. 계속 아프면 재수 실패하는 것 알지?”라고 불호령이다.

○ ‘독재 학원’

허가 없이 학원을 벗어나거나 지시 불이행 등 당초 서명했던 생활규칙 준수 서약서 내용을 어기면 벌점을 받고 경위서를 써야 한다. 이성 교제, 주변 사람과의 대화, 염색, 짧은 바지와 치마, 액세서리 착용은 모두 금지 사항이다. 벌점이 6점 쌓이면 정학, 12점이면 제적이다. 학원 벽 곳곳엔 학원생이 정학, 제적을 당했음을 알리는 붉은 종이가 20장 넘게 붙어 있다. 휴대전화를 갖고 있다가 걸리면 1개월에서 길게는 수능이 끝날 때까지 기기를 압수당한다.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한 대여용 노트북에는 학원이 설치한 감시 시스템이 깔려 있다. 웹서핑 등 ‘딴짓 방지용’이다.

볼펜과 형광펜뿐 아니라 스톱워치도 장 씨의 필수 용품이다. 오전 7시 30분이 되면 학원이 제공하는 영어 단어 시험 40문제를 20분 만에 풀고, 또 20분 동안 미니 모의고사 12문제를 푼다. 3개 이상 틀리면 점심, 저녁 시간에 재시험을 봐야 한다. 점심을 편히 먹으려면 단어를 미리 외워두는 게 상책이다. 1교시부터는 자신과의 싸움이다. 1시간 20분씩 8교시를 거쳐야 집에 갈 수 있다. 일단 학원에 들어온 이상 오후 10시까지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인터넷에서는 ‘독재 학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 새 입시와 세태가 낳은 학원

그는 어떤 인터넷 강의를 듣고, 어떤 단과 수업을 들을지, 어떤 교재를 구입할지까지 모두 학원 강사와 상의해 결정한다. 모의고사를 보고 난 후에는 학생 상담과 학부모 상담도 이뤄진다.

‘학원을 차려놓고 독학으로 포장을 한다’는 비아냥거림도 있지만 철저한 관리를 해준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학부모가 많다. 학원이 생활관리뿐 아니라 매월 1, 2회 이상 모의고사를 치르게 하고 질의응답과 입시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반수를 결심한 아들을 대치동의 한 독학재수학원에 데려온 김모 씨(52·여)는 “일반 독서실은 휴대전화도 쓸 수 있고, 출입이 자유롭다”며 “독학재수학원에선 필요한 부분에 집중하면서 생활지도가 훨씬 엄격해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한준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성장 과정에서 항상 엄마의 관리를 받아 온 요즘 아이들은 커서도 돌봄을 필요로 하는 경향이 있다”며 “독학재수학원 같은 입시 기관이 늘어나는 것도 자기 관리나 통제가 어려운 학생들이 늘어난 데 따른 현상 같다”고 말했다.

노지원 기자 zone@donga.com
#재수#학원#독서실#독재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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