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부’ 군주 정조 보좌한 ‘똑똑한 2인자’ 채제공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18일 11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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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이 쓰는 재미있는 약어 중에 ‘똑게, 똑부, 멍게, 멍부’라는 말이 있다. 상사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한 것이다. 순서대로 ‘똑똑하고 게으른’, ‘똑똑하고 부지런한’, ‘멍청하고 게으른’, ‘멍청하고 부지런한’ 상사‘를 뜻한다.

조선의 정조(재위기간 1776-1800)는 1인자로서는 굉장히 까다로운 유형인 ’똑똑하고 부지런한 리더‘였다. 웬만해서는 2인자인 재상들이 정조의 마음에 들기가 어려웠는데, 재상 채제공(1720-1799)은 정조로부터 큰 신뢰를 받았고 앞장서서 당대의 개혁 어젠다를 추진했다. 그는 정조의 노선을 충실히 따랐지만 무조건적으로 추종하는 ’예스맨‘은 아니었다. 하지만 임금을 절대 직접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간언을 통해 군주를 바로 잡는 것을 재상의 제1책무로 여기고, 임금이 듣기 싫은 말까지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사회에서 이는 이례적인 모습이었다. 실제 다른 재상들은 정조의 독단적인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곤 했기 때문에 선비들 사이에서 채제공이 재상답지 못한 재상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채제공은 자기 고집이 강하고 다른 이들의 일처리에 불만이 많은 정조에게 직접적인 비판을 가할 경우 오히려 고집을 꺾지 않고 잘못된 일을 밀어붙이는 역효과가 날 것을 우려했다. 그는 주로 일의 각론이나 정책의 시행방법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형태로 간언을 했다. 정조가 이야기한 A안에 동의할 수 없을 때에는 “A가 아니라 B가 맞다”고 말하지 않고 “A가 맞지만 A+1 혹은 A-1로 하면 더 나아질 것 같다”고 말하는 방식을 활용했다. 정조의 자존심을 세워주면서도 정조의 결정을 보완하고 어떤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도록 유도한 것이다. 물론 소극적인 태도라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파 노론이 아닌 ’소수파‘ 남인 출신이었던 채제공 입장에서 이는 분명한 차선책이었다.

실제 이러한 채제공의 스탠스는 1인자와의 친밀한 관계를 설정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채제공과 같은 소수파 출신 2인자가 믿을 곳은 1인자밖에 없다. 채제공은 정조의 뜻에 충실히 따랐고, 정조가 요구하는 일들을 앞장서 추진했으며,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거나 이해관계를 따지더라도 반드시 정조가 제시한 한계선을 벗어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랬기에 안정적으로 개혁과제를 추진할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조시대의 성공한 개혁 중 하나로 꼽히는 ’신해통공‘은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실현가능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가 독점권을 인정해 준 시전상인들 외에는 상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서 다양한 형태의 ’법외 상거래‘를 하고 있었다. 채제공은 이를 오히려 양성화하는 것이 국가 전체적으로는 물론이고 백성들에게도 이득이라고 보고 정조의 신뢰를 바탕으로 노론의 반대를 극복하면서 개혁에 성공했다.

정조의 입장에서도 자신이 아무리 ’똑부‘형 리더라 하더라도 혼자서 나라의 모든 일을 다 처리할 수 없기에 능력있고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2인자가 필요했는데, 채제공이 바로 적임자가 된 셈이다. 자신이 속한 조직의 1인자가 ’똑부‘이고 그를 보좌하는 입장이라면 채제공의 방식은 조직을 위한 올바른 결정을 위해서든, 1인자와의 친밀한 관계 형성을 위해서든 매우 좋은 방법이다.

김준태 성균관대 동양철학문화연구소 연구원 akademi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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