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항일운동가 등 인천을 빛낸 인물을 찾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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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시 ‘인물DB’ 만들기 활발… 박한철 헌재소장-류현진 등
각계 인사 700여명 자료정리

“해방과 근대화 혁명의 성공은 많은 애국자와 선구자들의 희생으로 쌓아올린 피와 눈물의 축조물입니다. 죽산 조봉암 선생님만큼 정통성 정체성 정당성과 그 성취가 우뚝한 선각자를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난달 31일 서울 망우리묘지에서 열린 죽산 조봉암 선생(1899∼1959)의 56주기 추모식 때 김현진 전 동아일보사 논설주간은 이런 추도사를 했다. 인천 강화도에서 태어난 죽산 선생은 일제강점기 항일운동을 펼치다 옥고를 치른 민족운동가였다. 광복 이후 인천에서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조직했고 초대 농림부 장관을 맡아 당시 난제였던 토지개혁을 주도했다. 1952년과 1956년 대통령선거에 출마해 차점으로 낙선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진보당 사건에 연루돼 1959년 7월 31일 사형 집행을 받았다. 그는 2011년 대법원 무죄 판결로 간첩죄 누명을 벗었다.

죽산 선생과 같이 광복 사업에 큰 족적을 남긴 인천 출신의 거목은 상당수에 이른다. 인천시는 2013년 ‘인물로 보는 인천사’라는 책을 통해 100명가량의 주요 인사를 조명한 바 있다. 이런 역사적 인물에 이어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인천 출신 인물을 발굴하려는 ‘인천가치 재창조’ 작업이 최근 인천시 주도로 진행되고 있다.

일제 침략이 본격화된 구한말 백범 김구 선생(1876∼1949)은 일본군 간첩을 죽인 혐의로 1896년 인천항 감리서에 투옥됐다. 사형까지 언도받았지만 2년 뒤 탈옥해 강화도에 은거했다. 이런 연고로 ‘백범 김구 선생 동상’이 인천대공원에 세워져 있다.

한국 최초의 근대식 군함 ‘양무호(揚武號)’ 함장은 인천 출신 신순성 선생(1878∼1944)이다. 3·1운동에 가담한 인천 출신 인물도 많다. 1936년 8월 25일자 동아일보 2면에 실린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대회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사진을 지운 이길용 전 동아일보 기자(1899∼미상)는 인천 영화학교를 나왔다. 그는 임시정부 비밀문서를 배포하다 감옥생활을 했다.

제헌국회 때부터 내리 5선 국회의원을 지낸 곽상훈 선생(1897∼1980)은 3·1운동에 참여한 뒤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독립운동을 벌였다. 1930, 40년대 인천을 무대로 항일운동을 했고 1960년 대통령 권한대행, 5대 국회의장을 지냈다. 한국 미학 연구의 선구자인 우현 고유섭 선생(1905∼1944)은 인천 용동 출신이다. 민족주의자로 평생 조선 미술사 연구에 독보적인 업적을 남겼다. 새얼문화재단은 1992년 인천시립박물관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3·1운동에 참여했다 옥고를 치른 길영희 선생(1900∼19840)은 1930년대 인천 만수동에 ‘후생농장’을 건설해 농촌계몽사업을 펼쳤다. 1956년 인천 명문고인 제물포고 초대 교장을 지내며 ‘무감독 시험’을 도입해 현재까지 이 학교 전통으로 남겼다. 향토 이야기인 ‘인천석금’을 펴낸 고일 선생(1903∼1975)은 일제강점기 인천사회운동을 주도한 언론인이다.

인천시는 인천 역사의 맥을 잇는 인물 데이터베이스(DB)를 만들고 있다. 최근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박호군 전 인천대 총장, 배우 최불암씨, 컴퓨터 한글 자판을 만든 이찬진 한글과컴퓨터 전 대표, 스포츠 스타인 이충희 전 농구 국가대표와 야구선수 류현진 등 각계 인사 700여 명의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인천 출신 인사들을 청소년 아카데미 강사로 초빙하는 등 인적 교류를 활발히 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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