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철호]철 지난 통계로 생색 낸 서울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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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발표한 자영업자 업종 지도… 알고보니 2012년 통계청 자료
“80%정도는 맞아” 무책임한 해명… 전문가 “믿고 창업했다간 낭패”

이철호·사회부
이철호·사회부
장사에 성공하려면 일단 ‘목’(위치)이 좋아야 한다. 불과 몇십 m 차이로 대박과 쪽박이 엇갈리는 것이 자영업의 현실이다. 그래서 경쟁이 치열한 프랜차이즈 업체들은 입지 선정만 전담하는 ‘점포개발팀’을 핵심 부서로 활용할 정도다.

이런 의미에서 27일 서울시가 발표한 ‘2014 자영업자 업종지도’는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 자영업자들에게 ‘가뭄에 단비’였다. 서울시는 이 지도를 통해 외식업 서비스업 등 43개 업종의 지역별 동향을 자세히 알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 업종지도는 이름부터 잘못됐다. ‘2014년 업종지도’라면서 실제 반영된 통계는 2012년 기준 통계청 ‘전국 사업체 조사’ 결과다.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내놓으며 ‘2012년 통계’라는 표현을 쏙 뺐다. 서울시 담당 직원은 “비록 3년 전 통계지만 작년에 시가 업종지도를 만들었으니 ‘2014년 지도’라고 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이런 식이면 10년 전 통계를 지금 갖다 써도 ‘2015년 자료’로 부를 수 있다.

갈수록 빨라지는 자영업 트렌드를 철 지난 통계가 제대로 보여줄지도 의문이다. 중소기업연구원 남윤형 연구위원은 “국내 자영업계의 2, 3년간 생존율은 50% 정도에 불과하다”며 “서울시 업종지도가 인용한 과거 통계는 현 상황과 다를 가능성이 높아 매우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서울시 창업지도를 보고 가게를 차렸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본보의 거듭된 문제제기에 서울시 담당 직원은 “2012년 통계가 마치 최신 현황인 것처럼 나간 것은 문제이며 앞으로 보완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러면서도 “지도 내용의 80% 정도는 (현재 상황과) 비슷할 듯해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서울시 간부는 “창업하는 사람들은 평균 8000만 원의 거금을 들여 가게를 차린다”며 “우리가 만든 업종지도는 그저 참고용일 뿐이고 다른 조사도 많이 있을 것이다”란 무책임한 답변을 내놓았다. 창업자 다수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참담하게 가게 문을 닫을 정도로 시장은 냉혹하기만 하다. 하지만 서울시는 다급한 시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자세도, 시민을 위하려는 자세도 갖추지 못했다. 박원순 시장이 그토록 비판했던 보여주기식 전시행정, 바로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이철호 기자 irontiger@donga.com
#서울시#통계#생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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