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 女 보트빌더, 입문 1년만에 카누 8대-카약 1대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7일 16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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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 '스승 복'이 많아요.^^ "
국내 최초 '여성 보트빌더(Boatbuilder)' 신고한 연세대 원주캠퍼스 최소영 양

<이번 학기부터 처음으로 학교 교양과목에 '보트 패들링' 수업이 개설되었는데요, 수업 때 사용할 보트 5대를 '올리버 선박학교' 에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원생 3명(공준석, 김세희, 김지해)과 학부생 1명(최소영), 이렇게 네 명을 구성원으로 하여 진행되었으며, 1월초에 카누 제작을 시작하여 3월 중순쯤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아마 다들 보트 빌딩(boat building)이라고 하면 굉장히 생소한 느낌을 받을 텐데 산업디자인 학부생으로서 '나무'라는 소재에 대한 공부와 동시에 카누를 제작해 볼 수 있는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보트 빌딩에는 FRP, 알루미늄, 나무 등 여러 가지 소재가 사용되는 데요. 우든 보트(wooden boat)의 경우에는 강한 충격에 대한 강성이 높고, 보온성, 방음성 등에서 매우 유리하답니다. 특히 전통적인 선박 자재로서 다른 합성 소재들로 만들어진 보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미적인 가치가 있습니다. 카누의 경우 모든 면이 삼차원인 제품으로서 제품 자체의 형태에 대한 이해를 하는 것도 중요했으며, 축소된 사이즈의 모형이 아니라 실제 1:1 사이즈로 제작을 하여 기존 학부 수업에서 해보았던 목업(mockup)들과는 느낌이 아주 달랐습니다. 특히 사용자가 우리 학교 학생들이라고 생각하니 작업에 대한 마음가짐 또한 달랐습니다.

필자의 경우 이번 경험을 시작으로 선박에 대한 공부를 좀더 깊이 있게 해 볼 생각입니다. 선박 쪽으로 진로를 잡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저런 값진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기회라고 생각됩니다. 혹시라도 차후에 이러한 비슷한 기회가 생긴다면 도전해보는 것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연세대 원주캠퍼스 산업디자인 전공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이 게시돼있다. 4학년 최소영 씨가 올린 글이다.

소영 씨는 벌써 14피트(약 4.3m)와 16피트(약 4.9m)짜리 카누 8대, 카약 1대 제작에 참여한 '보트 빌더'다. 카약이나 카누, 또는 레저보트에 관한 한 한국은 아직 불모지나 다름없다. 그래서 레저보트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보트 빌더 또한 극소수다. 그런 중에서도 나무를 소재로 하는 우든 보트(wooden boat) 빌더는 더욱 드물고 더구나 여성은 전무했다.

소영 씨가 우든 보트에 빠진 건 1년 전인 3학년 때.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는 만큼 제품의 '소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 무렵이었다. 학과 홈페이지에 '교양과목으로 패들링(paddling·노를 이용하는 스포츠) 수업을 신설하기에 앞서 원주 지역에 있는 올리버 선박학교에서 우든 카누 제작을 경험할 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였다.

소영 씨은 '우든(wooden)'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소재 중에서도 가장 클래식한 소재여서다.
"처음엔 '이게 뭐지?'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갑자기 카누라고 하니까…. 원래 공예에 관심이 많아 그냥 앉아서 컴퓨터 작업을 하는 것 보다 금속이나 패브릭(섬유), 목재로 뭘 만드는 게 더 좋았어요. 그런데 카누를 나무로 짓는다고 하니까 '이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니 좋겠다는 정도가 아니라 되게 신났어요. 가구 같은 건 일반적으로 만드는 것이지만 배는 평소에 접해볼 기회가 없잖아요."

신청자가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정작 과 사무실에 물어보니 혼자뿐이었다. 그런데 이 수업은 적어도 2명은 신청해야 시작되는 프로그램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매달렸다. 같이 하자고. 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그러다 겨우 '대학원생 오빠' 한 명 설득해 카누 제작을 시작했다. 학교에서도 패들링 수업 과목을 확충하기 위해 우든 카누 제작의뢰를 늘렸다. 올 봄에는 대학원생 언니 오빠 3명이 합류했다.

그러는 사이에 가슴 속에서 슬금슬금 다른 꿈이 자라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이었다. 그래서 최근 휴학계를 내고 아예 올리버 보트스쿨의 정규과정에 편입했다. 9월부터 시작하는 과정이다.

―그 정도로 카누를 만들었으면 나무라는 소재에 대한 애초의 관심은 어느 정도 충족됐을 것 같은데.

"굉장히 만족해요. 나무를 가지고 작업할 때 어떤 공구를 사용해 어떤 식으로 모양을 만들어나가는지 체험을 해보니까 그게 참 좋았어요. 배를 만드는 재료는 많지만 목재가 주는 고유의 느낌이 있잖아요. 또 하나, 제가 인복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스승님 복이 있는 것 같아요."

―스승님 복이란?

"예를 들어 고등학교 때 오빠랑 따로 과외선생님을 구해도 제 선생님은 아주 괜찮은 분이 배정됐어요. 늘 인복이 많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고비 고비마다 딱딱 있었어요. 그런데 대학에 들어와서는 그런 생각 안 들었는데 올리버 선박학교에서 카누를 만들면서 '또 왔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박학교를 운영하시는 최준영 선생님이 마스터 빌더(master builder)이면서 디자이너라서요. 배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폭넓게 이 것 저 것 가르쳐 주시거든요. 제가 학교를 휴학하고 올리버 정규과정에 들어온 이유의 절반은 선생님 때문이에요. '이분 옆에 딱 붙어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트빌딩이 디자인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인가요?

"분명히 도움이 돼요. 산업디자인이라는 게 늘 심미성과 상업성을 함께 추구해야 하는 것이거든요. 올리버보트학교 선생님은 항상 그 두 가지를 다 얘기해주세요. 그리고 대학 강의실처럼 한꺼번에 쏟아 붓지 않고 카누나 카약을 만드는 과정에서 그 때 그 때 가르쳐주시는 게 좋아요."

―혹시 그러다가 산업디자인 대신 보트빌딩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국내 보트빌딩 업계는 불모지나 마찬가지인데.

"부모님도 그 부분을 걱정하세요. 보트빌딩은 크게 보트 디자인과 빌딩으로 나뉘는데 사실 설계(디자인)를 하자면 처음부터 공부를 다시 해야 해요. 산업디자인 실기 쪽은 수학을 거의 안 하거든요. 또 빌더 쪽은 체력적인 문제가 있어서…. 지금은 그냥 하고 싶은 거 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나중에 스스로 힘들어서 나가떨어질지도 모르잖아요."

―부모님은 뭐라고 해요?

"사실 우리 학교 산업디자인과 학부생 중에서 쉬지 않고 계속 4학년까지 올라온 사람은 저 한명뿐 이예요. 산업디자인 인력배출이 포화상태라 다들 진로에 고민이 많거든요. 중간에 다른 기술 프로그램을 배우는 사람도 있고, 아예 진로를 바꾸는 사람도 있어요. 일단 저는 졸업전시회(졸전) 작품 준비를 겸하는 것이라 부모님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어요."

―그럼 올리버 선박학교에서 보트빌딩을 배우며 산업디자인과 졸업 작품도 준비하겠다는 얘기인가?

"예. 선박학교 선생님하고 그 문제도 상의했는데 '도시 중상층이 해양레저를 즐기기에 적합한 보트'를 졸업전 출품 작품으로 정했어요. 카누나 카약 잠깐 배운 걸로 제가 보트 디자인을 할 순 없기 때문에 저는 올리버 선박학교 선생님이 설계한 보트의 실내 디자인을 작품으로 준비하게 될 것 같아요."

―보트빌딩이 그렇게 신나는 일인가요?

"그럼요. 예컨대 목조선박의 선체를 강화하기 위해 파이버글라스(유리섬유)를 적층하는 과정이 있는데 반복 작업을 하다 보니 내 기술이 전보다 늘었다는 쾌감이 들었어요. 작업속도도 빨라졌고요. 선박학교 정규과정의 동기생이 만드는 카누를 그렇게 해서 도와줬는데 배가 너무 잘나온 거예요. 굉장히 기분이 좋았어요."

―꼭 만들어보고 싶은 배도 생겼어요?

"카누나 카약을 보통 라이트 크래프트(light craft)라고 하거든요. 이젠 그런 라이트 크래프트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트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 학교에서 선생님이 정규 스태프들과 함께 캐빈(cabin)을 갖춘 22피트(약 6.7m)짜리 파워보트를 만들고 계시는데 솔직히 그건 좀 무서워요. 배가 저보다 너무 커서…. 하지만 좋은 사람들과 함께 그런 보트를 만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지금 올리버 선박학교 정규과정 동기생이 모두 5명인데 이제 겨우 한달 정도 함께 지냈지만 다들 너무 괜찮은 사람들이라 좋아요."

-폴란드에서도 지냈다고 하던데.

"초등학교 5학년 마칠 때쯤 아빠가 폴란드로 발령이 나서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바르샤바에서 살았어요. 지금도 폴란드에서 살다온 게 너무 감사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제 삶의 터닝 포인트가 됐거든요."

―어떤 점에서 그런 것인지.

"예. 그 즈음이 보통 자아가 형성되는 시기잖아요? 처음 폴란드에 가서 스쿨 픽쳐(schppl picture·학교생활 중에 촬영하는 공식사진)를 찍는데 처음 찍은 사진과 1년 뒤에 찍은 게 너무 차이가 나는 거예요. 경북 구미에서 살다가 갔는데 시골에서 마구 뛰어놀다가 가니까 얼굴이 시커멓잖아요. 옷도 오빠 옷을 입고 있었고. 제일 큰 차이가 표정이었어요. 처음엔 웃지를 못했어요. 단체 사진을 찍는데 하얀 이빨들이 주~욱 이어지다가 뚝 끊어지는 곳이 있는데 바로 한국 애들이 있는 자리에요. 웃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1년 뒤에 보니까 표정이 정말 달라졌더라고요. 옷차림이나 머리 모양도 발끝까지 바뀌어 있고. 하여튼 원래 5년 예정이었다가 아빠 회사 사정으로 2년 반 만에 다시 돌아왔는데 너무 서운했어요."

―한국은 보트빌딩 시장이 극히 협소한데 혹시 외국에 나갈 생각도 있어요?

"아직 자세한 계획은 없지만 기회만 되면 무조건 나갈 것 같아요."

김창혁 전문기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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