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심끝 땅 내준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 제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미얀마 국립묘지 입구에 세워

아웅산 폭탄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아웅산 순국사절 추모비’ 제막식이 현충일인 6일 오전 미얀마 양곤에서 열렸다. 제막식에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권철현 추모비 건립위원장, 순국사절 유족 23명 등 60여 명이 참석했다.

미얀마 최대 도시 양곤에 있는 아웅산 국립묘지는 북한이 1983년 10월 9일 당시 전두환 대통령과 수행단을 겨냥해 폭탄 테러를 자행한 곳이다. 전 전 대통령은 화를 면했지만 서석준 부총리와 이범석 외무부 장관 등 대통령 수행단 17명과 미얀마인 7명이 사망하고 50명이 부상했다. 정부 인사가 아닌 민간인으로는 유일하게, 현장을 취재하던 동아일보 사진부 이중현 기자가 순직했다.

아웅산 테러 희생… 본보 이중현 기자
아웅산 테러 희생… 본보 이중현 기자
2012년 5월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테러 사건 이후 한국 대통령으로는 처음 미얀마를 방문해 추모비 건립 필요성을 공식 제기했다. 이후 양국 간 논의를 거쳐 지난해 말 추모비 건립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당초 추모비는 지난해 10월 테러 발생 30주기를 맞아 설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미얀마가 자국 국립묘지에 타국 정부의 추모비 건립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풀지 않아 건립시기가 계속 지연됐다. 아웅산 국립묘지는 일반인에게는 출입과 사진 촬영도 금지할 만큼 엄격하게 관리돼 왔다. 결국 양국이 국립묘지 입구로 건립 위치를 타협하면서 접점을 찾을 수 있었다. 윤 장관은 제막식에서 “내년 양국 수교 40주년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추모비 건립은 의미가 크다”며 “북한도 미얀마처럼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웅산 국립묘지의 북문 입구 경비동 부지(258m²)에 설치된 추모비는 가로 9m, 높이 1.5m, 두께 1m 크기다. 추모비 사이의 틈으로 100m 정도 떨어진 테러 발생 현장이 보이도록 설계됐다. 추모비 제작과 운송에 약 7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 1492억원 드는 ‘우정의 다리’ 공짜로 건설 요구 ▼

해외자본 밀물… 콧대 높아져

외국인 투자와 무상원조가 급증한 미얀마의 콧대가 높아지면서 한국-미얀마 간 협력사업이 잇달아 삐걱대고 있다. 2011년에 집권한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이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뒤 미국의 제재 해제로 미얀마에는 지정학적 경제적 잠재가치를 겨냥한 각국의 경제협력 제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국 정부 일각에서는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너무 다른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정부 당국자는 6일 “미얀마의 요청으로 양곤 강에 짓기로 했던 ‘한-미얀마 우정의 다리’가 재원 조달 방식에 대한 이견 때문에 표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길이 2.2km인 ‘우정의 다리’의 공사비는 1억4600만 달러(약 1492억 원)에 달한다. 한국은 유상원조로 다리를 건설하기 위해 타당성 조사를 마쳤고 그 결과를 토대로 올 초 미얀마에 차관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미얀마는 최근 “무상원조로 해달라”고 태도를 바꿨다. 한국은 유·무상 비율을 7 대 3까지 낮출 수 있다고 수정 제안했지만 미얀마는 이마저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 정부의 양곤개발위원회(YCDC)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이 친선 목적으로 다리를 짓기로 하고 건설비용의 100%를 부담하기로 했으나 차관 방식으로 재협상을 요구해 추진 계획을 중단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에 대해 한국 정부 당국자는 “미얀마가 한국의 호의적인 협력사업 제안에 적반하장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맞받았다.

미얀마는 바고 한타와디 공항 확장공사에서도 인천공항공사 등 한국 기업 컨소시엄을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던 결정을 뒤집었다. ‘싱가포르 컨소시엄 등과 함께 유·무상 비율을 조정한 제안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구해 사업이 중단된 상태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아웅산 폭탄 테러#현충일#추모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