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폐지 줍는 노인들, 이중고 시달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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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가격 1kg당 80∼90원으로 뚝… 고물상은 도심 외곽으로 밀려나

배모 씨(51)는 2012년 공사장에서 일하다 허리를 다친 뒤 아내와 1t 트럭을 몰고 다니며 폐지를 모아 생활한다. 배 씨 부부가 하루 10시간이 넘도록 폐지와 고철을 모아 판 돈은 한 달 평균 90만 원 선. 부부는 폐지 수집을 시작한 뒤부터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전남지역본부에 매달 4만 원씩을 기부한다. 배 씨는 “폐지를 실은 손수레를 힘들게 끌고 가는 노인을 만나면 kg당 10∼20원이라도 비싸게 사 고물상에 되팔고 있다”며 “불경기가 길어지면서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빈곤 사각층이 더 늘고 있다”고 말했다. 폐지를 줍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일부 노인은 도심 외곽 농촌까지 원정을 가서 폐지를 줍고 있다. 이에 따라 빈곤 사각지대를 위한 지역사회의 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 널뛰는 폐지 값, 멀어지는 고물상

광주 광산구 첨단지구에만 폐지를 줍는 노인이 150명으로 추산된다. 요즘 노인들이 하루 종일 폐지를 주워도 3000원을 벌기 힘들다. 폐지가격이 kg당 80∼90원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배 씨는 “폐지 값이 kg당 적어도 100원은 넘어야 노인들이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폐지가격은 가장 낮을 때 kg당 50원, 가장 높을 때는 kg당 220원이었다. 폐지가격이 널뛰는 것에 대해 업체 관계자들은 “폐지가격은 세계 경기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업체 간 담합과 고물상에 대한 세무조사가 가격을 떨어뜨린다”고 반박한다. 노인들이 모으는 폐지는 소형 고물상∼대형 고물상∼재활용업체∼제지공장까지 복잡한 유통 과정을 거쳐 골판지로 다시 태어난다.

도심에 있던 고물상이 외곽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도 노인들에게는 큰 고충이다. 광산구의 한 마을 주민들은 4일 마을 안에 고물상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집회를 구청 앞에서 열려다 취소했다. 주민들은 “고물상이 들어서면 냄새가 난다”고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물상은 주민들에게 혐오시설이지만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극빈층과 자원 재순환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시설이다. 광주지역 고물상 492개 가운데 43%(210개)가 농촌지역인 광산구에 있다.

○ 폐지 수거 협동조합도 생겨

지난해 1월 광산구에는 폐지 수집으로 생활하는 빈곤층 노인들을 위한 마중물 협동조합이 처음 생겼다. 협동조합은 이사 12명과 노인 회원 15명으로 이뤄져 있다. 이사와 노인 회원들은 함께 폐지를 주워 번 수익금을 빈곤층 노인 회원 8명에게 생활비로 지급한다. 이사 12명과 나머지 노인 회원 7명은 자원봉사를 하는 것. 생활비를 지원받는 노인 회원들은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는 차상위계층 가운데 선정한다.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자녀가 있어 기초수급자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협동조합은 빈곤층 노인회원 8명에게 리어카를 제작해주고 방한복, 김장김치 등을 챙겨주고 있다. 협동조합 컨테이너 사무실은 이사 한 명의 고물상 빈터에 마련됐다. 이사 전은숙 씨(47·여)는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해 하루 종일 노인들과 함께 폐지를 찾아다니다 밤에야 퇴근한다. 전 씨는 “협동조합에 안정적으로 폐지를 공급해주는 공공기관이나 사업장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고물상 사장 김모 씨(49)는 “노인들이 모은 폐지를 사회단체 등에서 구매해 되파는 등 복잡한 유통구조를 줄여 노인들의 수입을 높여주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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