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의정부교도소 무연고자 분묘에 잠든 아버지 이장한 마흔아홉 김진수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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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성인이 돼서야 알았다
교도소 묻힌지 44년만에… 마침내 출소시켜 드렸다

‘무연고자 분묘’를 어루만지는 장보익 의정부교도소 소장(왼쪽)과 윤창식 총무과장. 이들은 “죄는 미워도 사람이 밉지는 않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이들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의정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무연고자 분묘’를 어루만지는 장보익 의정부교도소 소장(왼쪽)과 윤창식 총무과장. 이들은 “죄는 미워도 사람이 밉지는 않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이들이라 안타깝다”고 했다. 의정부=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 삽 한 삽 흙을 파헤칠수록 가슴이 조여왔다. 마을 사람들 말이 떠올라서인지 아버지 유골이 유독 커보였다. “농사꾼이었지만 느그 아버지 징하게 멋있었당께” “180cm도 넘게 크고 착했지” 전남 해남에 살던 시절, 이웃 주민들은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런 아버지가 김진수 씨(가명·49)의 기억에는 조각조차 없었다. 아버지는 진수 씨가 네 살 때 돌아가셨다.

진수 씨는 지난해 4월 3일 의정부교도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26일 뒤 여동생과 함께 교도소를 찾았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이장을 미루고 가끔 묘에 꽃만 갖다 뒀다. 후회가 밀려왔다. 아버지께 처음 술 한 잔 올리고 진수 씨도 마셨다. 취기가 올랐다. 진수 씨는 ‘아버지를 제대로 모셔야겠다’고 결심했다. 27년을 미룬 일이었다.

1941년생인 그의 아버지는 1969년 2월 의정부교도소에 수용됐다. 가정집에서 현금 1300원과 구두를 훔친 혐의였다. 징역 1년이었지만 수감 5개월 만에 폐결핵과 장결핵으로 사망했다. 그러곤 교도소 내 ‘무연고자 분묘’에 묻혔다.

진수 씨는 22세가 돼서야 아버지가 어디 있는지 알았다. 먼 친척이 “교도소는 찾아가보냐”고 한 것이다. 그전까지 어머니와 친척들은 모두 아버지가 “베트남전쟁에서 돌아가셨다”고 했다. “진실을 말해 달라”는 진수 씨에게 작은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진수 씨는 방황했다. 자랑스러웠던 아버지가 범죄자로 바뀐 사실에 적응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유골을 꺼내 놓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진수 씨에게 의정부교도소 윤창식 총무과장(44)이 다가왔다. “부친께서 44년 만에 출소하게 됐습니다.” 누렇게 바랜 서류 7장도 건넸다. 아버지에 대한 판결문과 수용기록, 형집행지휘서, 석방지휘서…. “아버님의 젊은 시절을 다 알려드릴 수 없어 죄송합니다. 다 찾아봤지만 이것뿐이네요.”

사실 윤 총무과장에게 진수 씨는 특이한 사람이었다. 다른 교도소에서도 무연고자 유골을 이장해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44년 만에 아버지를 챙기는 아들의 모습이 대견해 보였다.

서류 속 아버지의 얼굴은 진수 씨와 닮아 있었다. 말없이 서류를 보던 진수 씨가 물었다. “당시 1300원이 어느 정도 돈이었나요?” 그리고는 혼잣말을 했다. “아무려면 어때. 우리 아버지인데….”

아버지가 폐결핵으로 사망해 형 집행이 정지됐다는 석방지휘서를 보면서 생각했다. ‘나도 폐가 안 좋은데….’ 이날에서야 알았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아버지가 자신들을 먹여 살려보겠다고 나쁜 짓을 했고 아파하며 쓸쓸히 죽었다는 것을…. 진수 씨는 “몰랐던 아버지를 알게 된 것만으로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진수 씨는 아버지가 있던 자리에 향나무를 심고 유골을 수습해 돌아갔다.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자 분묘’지만 명절 때만은 의정부교도소 교도관들이 음식과 술을 차려 성묘를 한다. 지난해 9월 추석에 교도관들이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 의정부교도소 제공
아무도 찾지 않는 ‘무연고자 분묘’지만 명절 때만은 의정부교도소 교도관들이 음식과 술을 차려 성묘를 한다. 지난해 9월 추석에 교도관들이 절을 올리고 있는 모습. 의정부교도소 제공
의정부교도소 무연고자 분묘에는 아직도 13명의 유골이 묻혀 있다. 교도소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수용자들이 경작하는 밭이 있는데, 그 바로 앞 야산 입구에 500여 평의 묘지가 있다. 교도소에서 숨진 13명이 25∼46년째 이곳에 잠들어 있다. 10년이 지난 서류는 국가기록원에서 보관하고 있어 이들이 무슨 이유로 수감돼서 어떻게 사망했는지도 기록을 뒤져봐야 알 수 있다. ‘OOO의 묘’라는 글만 적혀 있는 하얀 목재 묘표만이 세상에서 잊혀진 무덤 속 주인의 신원을 말해줄 뿐이다.

사망 사실을 통보했지만 대부분 유족들이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고 한다. 당시 법은 ‘가족에게 통지 후 24시간 내 시신 청구가 없을 경우 교도소 묘지에 가매장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에 따르면 이 법에 따라 전국 54개 교정기관 중 34곳에 2797구의 시신이 묻혀 있다. 현재는 ‘3일 이내에 유족이 인수하지 않으면 임시매장하거나 화장할 수 있다’고 법이 바뀌었다.

설 명절에도 찾아오는 이가 없는 무덤가는 쓸쓸하다. 가족에게조차 버림받은 영혼이어서 더 그렇다. 교도관들은 명절마다 분묘에 음식을 차리고 술을 따른다. 정기적으로 벌초도 한다. 장마철에 혹시 떠내려갈까 걱정하는 것도 교도관들의 몫이다.

장보익 의정부교도소 소장(57)은 “당시는 등기로 연락하던 때라 쉽지 않았고, 가족이 범죄자일 경우 사회적으로 따돌림 받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정형편이 좋지 않으면 시신을 찾아가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며 “이제는 먼 친척이라도 대부분 연락이 닿고, 인도자가 없을 경우 국가 예산에 따라 화장을 해주기 때문에 무연고자 분묘에 묻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교도소에서 숨진 가족이나 지인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해당 교도소나 교정본부에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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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의정부교도소#무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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