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도로에 찢기고 건물에 뜯기고… 강화 유적 ‘수난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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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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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성 주변 훼손 심각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강화외성과 연결되는 강화도 가리산돈대 주변에서 진입도로 공사가 최근 시작됐다. 문화재가 마구 훼손되고 있지만 당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국가사적지로 지정된 강화외성과 연결되는 강화도 가리산돈대 주변에서 진입도로 공사가 최근 시작됐다. 문화재가 마구 훼손되고 있지만 당국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지붕 없는 박물관’으로 불릴 정도로 유적지가 많은 인천 강화도에서 국방유적이 마구 훼손되고 있다. 사적지로 지정돼 있어 건축물 신축이 불가능한 문화재보호 1구역에서 산허리를 자르고 도로 개설공사가 이뤄지고 있는가 하면 건축제한지역(보호 2∼4구역)에서는 건물 신축이 무분별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강화대교 좌우 해안가를 중심으로 문화재 훼손 행위가 빈발하고 있지만 보존 관리 책임을 맡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손을 놓고 있다.

8일 인천 강화군 선원면 신정리 가리산돈대로 이어지는 산등성이에서는 길닦이 공사가 한창이었다. 그 바람에 산허리가 잘려 나간 모양새였다. 해안도로와 맞붙은 이곳은 국가 사적지 452호인 강화외성의 일부 구역이다. 고려 때 처음 만들어진 강화외성은 조선시대 숙종 5년(1679년)에 다시 축조됐고, 가리산돈대는 강화 해안가의 53개 돈대 중 하나.

가리산돈대 주변 사유지의 진입도로를 개설하기 위해 이 돈대와 외성을 잇는 주요 지점에서 포클레인이 산등성이를 파헤치고 있는 것이다. 강화군 문화재 관리 담당자는 “보호 1구역에서의 문화재 형상변경 없이 도로 공사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미 건축허가를 받아 공사를 하고 있는 개인 땅이기 때문에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화도 갑곶진 주변에 있었던 성벽 정문 격인 진해루의 1920년대 모습. 이 주변에서 천주교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 제공
강화도 갑곶진 주변에 있었던 성벽 정문 격인 진해루의 1920년대 모습. 이 주변에서 천주교 성역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인천시 제공
가리산돈대 성벽 주변에서도 문화재가 훼손되고 있다. 성벽 인근에 6·25전쟁 참전 기념비가 들어서 있고, 2000년 해안도로 공사로 인해 성벽 동측이 잘려 나갔다. 향토사학자 A 씨는 “고려 때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강화 외성의 길이가 23km나 되는데, 곳곳에서 훼손 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복원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강화읍 갑곶리의 갑곶돈대 일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강화의 남대문과 같은 성루인 ‘진해루’가 있었던 곳이어서 복원이 시급하지만 오히려 신축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있다.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던 갑곶진 경계지점에서 대형 성당과 수련관 건립 공사가 완공 단계에 있다. 1만4255m²의 터에 지하 1층, 지상 3층의 3개동 건물(총면적 1631m²)이 들어서고 있는 것. 이곳은 문화재보호 4구역에 속해 있지만 천주교 인천교구가 문화재 형상변경 허가를 받아 성당과 영성수련관을 짓고 있다.

인천교구는 진해루 일대까지 땅을 매입해 일반인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진해루는 1920년대까지만 해도 성루가 남아 있었으며, 진해루 안쪽에는 한국 최초의 근대식 해군교육기관인 ‘통제영학당(統制營學堂)’이 있었다. 해군은 통제영학당 터에 표지석을 세웠고, 시는 구한말 해군교육기관 복원을 위해 이 터를 기념물로 지정했다.

강화 외성은 이 진해루를 통해 북동쪽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갑곶진 북쪽의 강화대교 주변에서도 3층짜리 빌라가 최근에 여러 채 지어졌다.

강화외성의 연결 흔적이 이처럼 없어지고 있는 것은 사적지 주변에서 개발행위를 어느 정도 용인하는 ‘문화재 형상변경 허용기준안’이 너무 느슨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기준안으로 인해 국가 지정 문화재가 오히려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 인천시 관계자는 “강화군의 1차 의견을 반영한 기준안이 2009년부터 만들어지면서 강화대교 인근 사적지 주변에서 건축행위가 빈발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초 사적지 주변 500m 이내에서는 건축이 거의 불가능했지만, 이제 강화대교 주변의 강화외성 경계 20∼30m(1구역)만 벗어나도 건물 신축이 수월해진 것이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강화#유적 훼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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