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경기]고려시대 ‘千年의 종이’ 생명 되찾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한지 장인들 강화도에 수도권 1호 공장 세워
조선 한지보다 품질 우수한 고려紙 복원 나서

인천 강화도 선원사 연꽃밭 입구에 고려지 복원을 위한 수도권 1호 한지공장이 문을 열었다. 산성지가 아닌 중성지라 1000년 이상 보존된다는 한지 중에서 고려지가 으뜸으로 꼽힌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제공
인천 강화도 선원사 연꽃밭 입구에 고려지 복원을 위한 수도권 1호 한지공장이 문을 열었다. 산성지가 아닌 중성지라 1000년 이상 보존된다는 한지 중에서 고려지가 으뜸으로 꼽힌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제공
‘훈민정음, 조선왕조실록, 직지심체요절, 승정원일기….’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국내 9개 유산 중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을 제외하고 모두 한지로 기록된 고서들이다. 세계는 1000년 이상 보존할 수 있어 ‘1000년지(紙)’로 알려진 한지를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정작 국내에선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지 공장이 전북 전주와 남원, 강원 원주, 충북 괴산, 경기 평택 등 10여 개에 불과한 데다 규모와 시설이 모두 영세하다.

이런 실정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한지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똘똘 뭉쳤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와 한지 장인 등이 1일 수도권 1호 야외 한지공장 문을 열었다. 고려팔만대장경을 판각했던 사찰인 사적 제259호 선원사(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가 제공한 8만 m²의 연꽃 밭 입구 천막에 무쇠솥 2개, 물통(가로 2m, 세로 1.5m), 종이를 뜨는 발 등 한지를 만들 수 있는 도구를 설치했다. 밭에 핀 연꽃을 발아래에서 내다볼 수 있는 ‘노점 공장’인 셈이다.

이곳에서 한지 원료인 닥나무 줄기를 푹 삶아 줄기 껍질(닥피)을 홍두깨(나무 방망이)로 여러 차례 두드리는 한지 전통 제조법을 볼 수 있다. 홍두깨질로 인해 나무 섬유질이 풀처럼 흐물거리게 되고, 이를 나무 발로 걸러내는 물질 작업을 거쳐 꺼낸 뒤 말리면 한지가 탄생한다.

이런 공정이 진행되는 선원사 한지공장의 크기는 60m² 남짓. 소박한 규모로 차려졌지만 다른 한지공장과 비교하면 특급 수준이다. 선원사 연꽃축제가 열린 1∼5일 닥나무와 연 줄기를 이용해 한지를 만들어 보는 무료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됐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가 40년 경력의 한지 장인 2명을 초대해 한지를 뜨고 여러 가지 색상 한지로 컵 받침대, 접시 등의 생활용품을 만들어보게 하고 있다. 한지 연을 제작해 꼬리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려 보내게 한다.

앞으로 무형문화재 등 한지 장인을 이곳에 상주시켜 고려시대 한지인 ‘고려지(高麗紙)’ 복원사업을 펼치기로 했다. 고려지는 조선시대 한지보다 고급지였고, 몽골로 보내던 조공품 중 하나로 꼽혔던 것으로 전해온다. 고려지는 기록 보존을 위한 내구연한이 뛰어난 데다 질감, 생명력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했다.

선원사의 한지 공장은 또 한지 달력을 제작하고 한지를 단순한 생활용지가 아닌 ‘예술지’로 보급하는 작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수년 전부터 시중에서는 한지 느낌을 주는 달력이 인기를 끌고 있지만, 이는 대개 프랑스 수입 종이로 만들어진 것이다. 대기업과 금융기관이 주요 고객에게 나눠주고 있다는 이 VIP 달력은 나폴레옹이 문서보관용으로 애용했다는 프랑스 ‘아르슈’ 100% 순면 종이를 주 원료로 하고 있다. 실상이 이런데도 일반에서는 김홍도의 풍속화나 판화를 인쇄한 아르슈지를 한지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한지산업기술발전진흥회 차우수 회장(53)은 “최근 인쇄 기술이 개선돼 한지로도 대량 인쇄가 가능해져 이런 문제도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희제 기자 min07@donga.com
#인천#강화도#한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