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동서남북]위기관리 부재가 낳은 ‘총장 없는 전남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7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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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관리는 예상되는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조직에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에 대해서는 신속히 대응해서 그 확산을 막는 것이다. 정부나 기관, 기업 등이 위기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운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전남대를 보면 대학의 위기관리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전남대 박창수 총장 1순위 당선자는 13일 “선거 과정에서 부덕의 소치로 대학과 지역사회에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총장 임용 후보를 사퇴했다. 검찰이 전남대 총장선거 부정 의혹에 대해 수사를 벌인 지 꼭 10일 만이다. 박 당선자는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통해 사퇴의 변을 밝히기로 했다가 40분 전 돌연 회견을 취소했다. 언론 노출이 부담스럽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대신 1장짜리 짧은 회견문을 배포했다. 위기관리의 기본인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총장선거 부정 의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학내에서는 직선제를 고수한 탓에 검찰이 표적수사를 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학연과 지연, 향응 접대 등 직선제의 폐해에 대한 반성보다는 허물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위기의식 부재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대학본부는 수사 시작 9일 만에 공식 입장을 표명했다. ‘검찰이 전남대의 자율과 명예를 스스로 지켜나가고 해결할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박 당선자가 일부 부정선거를 시인하면서 빛이 바래고 말았다. 한마디로 수수방관(袖手傍觀)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다음 달 16일 퇴임하는 김윤수 총장은 9일부터 단과대를 돌며 총장 직선제 폐지 여부에 대한 의견 수렴을 하고 있다. 하지만 임기를 한 달 앞두고 학내 의견을 모은다는 것도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생각이 든다. 8월 말까지 교육과학기술부에 폐지 여부를 결정해 통보해야 하지만 시간이 촉박해 공론화가 제대로 이뤄질지 미지수다.

올해로 개교 60주년을 맞는 전남대는 당분간 총장이 없는 직무대행 체제가 불가피하다. 1988년 직선제 도입 이후 총장이 제때 임기를 시작하지 못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위기관리는 실수가 나왔을 때 그것을 감지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빨리 느낄수록 유리하다. 더 커지기 전에 수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수가 있었는데도 실수인 줄 모르는 것이 최악이다. 위기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하느냐에 따라 재도약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전남대는 ‘위기(危機)’의 사전적 의미조차 모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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