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눈은 보이지 않아도 제자들 마음은 또렷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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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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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가오중 국어교사 임용된 시각장애1급 유창수 씨

가오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창수 교사. 가오중 제공
가오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유창수 교사. 가오중 제공
“귀로만 들어서 임용고시를 준비한다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꿈꿔온 교사의 길이기에 주저앉을 수 없었습니다.”

이달 초 대전 가오중학교 국어 교사로 임용된 시각장애 1급 장애인 유창수 교사(42)의 임용고시 준비시절의 회고담이다. 마침내 교단에 선 유 교사는 해맑은 제자들의 눈망울을 가슴으로 바라보며 수업을 하고 있다. 가끔은 꿈을 꾸고 있는 것 아닌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그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 특수학교 아닌 일반 학교 과목 담당교사가 된 국내 3번째 주인공이다.

○ 교사 꿈꾸는 시각장애 초등학생

유 교사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야 자신의 시각장애의 심각성을 알았다. 교실과 신발장, 책상을 찾아가고 교과서를 읽는 데 남들보다 훨씬 큰 불편을 느꼈기 때문이다. 농촌에서 홀로 뛰어놀 땐 남들과 이렇게 큰 차이가 있는지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뿌연 세상에서 살아 잘 넘어지고 부딪히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 무렵 찾아간 안과병원은 “망막 이상으로 교정하면 낮에는 0.1의 시력을 유지할 수 있지만 밤에는 볼 수 없고 더 나빠지면 완전히 실명할 수 있다”는 판정을 내렸다.

고교 때까지 안경을 쓰면 그나마 칠판을 보고 필기하고 교과서나 참고서를 읽을 수 있었지만 시력이 떨어지면서 듣기 의존도가 높아져 점차 학업이 어려웠다. 제도적 장벽도 그를 막았다. 초등학교 때부터 갈망해온 교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교대를 지원했지만, 공무원 채용 신체검사 기준(교정시력 0.3 이상) 때문에 들어갈 수 없었다.

임용고시를 거쳐도 신체검사 기준 때문에 교사가 되긴 어려웠지만 언젠가는 꿈을 이루고 싶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에 교직 이수가 가능한 한남대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런 길은 열리지 않았고 2000년 무렵 백내장까지 겹쳐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완전 실명은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하나둘 사라져 가고 세상의 빛깔들이 지워져 갔죠. 암흑 속에 한없는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공황 장애에 빠져 들었고 폐와 간 질환도 찾아와 고통의 나날이 이어졌어요.”

○ 어둠 속에서 꿈이 다시 피어나고…

2007년 교사의 장애인 채용이 의무화 되고 장애인의 공무원 신체검사 규정에 예외 조항이 생기면서 시각장애인도 교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유 교사는 임용고시 준비에 나섰다. 전공(국어)과 교육학 관련 10여 과목을 공부하기 위해 학습 속도가 느린 점자 대신 스크린 리더를 통한 공부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스크린 리더는 한글텍스트 교재만 읽어낼 수 있는데 그런 자료가 없었다. 국어 과목은 유 교사가 처음 도전하는 분야였고 교육학은 이전에 시각장애인이 공부한 선례가 있었지만 자료를 얻기가 어려웠다. 교재를 발간한 출판사에는 한글텍스트가 있었지만 출판사는 저작권을, 저자는 판권을 이유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제안에도 불구하고 제공을 거부했다.

어쩔 수 없이 시각장애인복지관과 가족들의 도움을 얻어 권당 400∼500쪽의 교재 10여 권을 모두 한글텍스트로 바꿔야 했다. 이 작업에 무려 8개월이 걸렸다. 유 교사는 “저를 위해 교재를 만들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시험에 꼭 합격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루 8시간씩 들으면서 공부했더니 나중에는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이명(耳鳴) 현상까지 찾아왔다”고 말했다. 여러 형태의 도표와 흐름도, 지금과 표기가 다른 중세 국어 등을 듣기만으로 이해하기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장벽은 그가 꿈으로 건너가는 징검다리에 불과했다.

2009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뒤 2010년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 꿈을 이룬 지금 하루하루가 보람이고 매 수업시간이 기다려진다는 유 교사는 매일 아침 출근하면서 이렇게 되뇐다. “별은 캄캄한 밤에만 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꿈도 막막한 고난 속에서만 또렷이 볼 수 있습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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