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았네… 3만2000년전 그 꽃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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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구진, 시베리아 동토의 열매 개화 성공
영하 7도 지하 땅굴서 발견…세포조직 배양해 싹 틔워

현생 인류인 크로마뇽인이 지구상에 갓 등장하던 시대에 피었던 아름다운 꽃이 3만2000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의 장벽을 넘어 다시 피어났다.

러시아 연구진이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툰드라(영구 동토층) 지하에서 3만2000년 동안 얼어있던 열매로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고 외신들이 20일 일제히 전했다.

연구진이 꽃을 피운 열매는 땅속에서 저장된 상태에서 발견돼 싹을 틔운 식물 중 가장 오래된 사례로 기록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최고(最古) 기록은 2006년 이스라엘 연구진이 마사다 지역에서 채취해 발아시킨 2000년 전의 야자 씨앗이었다. 꽃의 경우에는 중국 과학자들이 1300년 된 연꽃 씨앗으로 꽃을 피워낸 것이 최고였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연구소의 다비트 길리친스키 박사 연구진은 수년 전 매머드와 털코뿔소를 비롯한 멸종 동물들의 뼈가 묻혀 있는 시베리아 콜리마 강 유역 지하 20∼40m 부근의 지층을 조사하던 중 축구공 크기의 땅굴 70여 개에서 씨앗과 열매 60만 개를 발견했다. 방사성동위원소 측정 결과 3만18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됐다.

씨앗과 열매가 발견된 지층은 대형 포유동물의 뼈들이 묻혀 있는 땅의 아래쪽에 있었다. 축구공 크기의 굴 안에는 마른 풀과 동물의 털 등이 깔려 있었다. 땅다람쥐가 먹이를 저장하기 위해 지표면 바로 아래에 판 땅굴들이 지각 변동 등으로 지하 깊숙이 내려앉은 것으로 추정된다. 열매 등이 발견된 땅굴 속의 온도는 평균 영하 7도였다.

연구진은 씨앗으로부터 여러 차례 싹을 틔우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씨앗이 아닌 열매 속에서 추출한 세포 조직을 배양액에서 키워 싹을 틔웠고, 이 싹을 일반 토양에 옮겨 심어 꽃을 피우는 데 성공했다. 연구진은 이 식물이 석죽과에 속하는 ‘실레네 스테노필라’로 오래전 멸종됐지만 계통상 현재 툰드라 지역에 자생하는 꽃과 가까운 친척관계라고 설명했다.

학계는 이번 연구가 고대 생물을 현재에 되살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
다. 영국 밀레니엄 종자은행의 로빈 프로버트 대표는 “성숙한 개체가 아닌 씨앗 조직에서 세포를 찾아내 발아에 성공한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라며 “이 방법이 발전되면 수만 년 전 멸종된 식물은 물론이고 영화 ‘쥬라기 공원’처럼 매머드를 비롯한 멸종 동물들을 현실에서 부활시키는 것도 가능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버포드 프라이스 교수는 “전 세계에는 북부 알래스카와 캐나다를 비롯해 많은 동토층이 있다. 러시아 연구진이 살려낸 이 식물은 불가능해 보였던 연구의 값진 결실”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미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발표됐다.

정윤식 기자 jy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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