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소득 하위 70%까지 지급… 누가 받을 수 있나 따져보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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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세 양육수당 기준에 ‘두 개의 함정’

《 최근 광주에 있는 30평형대 아파트(1억5000만 원)를 마련한 한모 씨(32)는 월 소득이 300만 원이다. 2000cc 신형 자동차(평가액 1500만 원), 1500만 원이 든 저축통장을 갖고 있지만 그는 내년부터 ‘소득 하위 70%’까지 주는 양육수당을 받는다.

반면 서울 외곽지역에서 전세(보증금 2억 원)를 살고 있는 김모 씨(33)는 월 소득 250만 원에 7년 된 1600cc 자동차(평가액 500만 원)를 보유하고 있고, 저축액은 1000만 원으로 한 씨보다 적지만 양육수당 수혜 대상이 아니다. 김 씨는 “전세 보증금을 똑같은 재산으로 계산하면 당연히 집값이 낮은 지방이 유리하다”며 “서울에선 전세 살아도 양육수당을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정부는 내년부터 전국 소득 하위 70% 가구의 0∼2세 영·유아가 있는 가구에 양육수당을 지원한다. 4인 가구를 기준으로 양육수당(1인당 10만 원)을 받는 가구는 연간 최대 240만 원의 혜택을 본다. 하지만 서울에선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가구는 60%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내 집’을 가진 가구보다 전세 가구가 수당을 받는 데 불리하고, 2500cc 이상 승용차를 보유한 가정은 소득이 적어도 양육수당을 받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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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경기, 울산 수혜가구 70% 안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10년 기준으로 0∼6세 영·유아가 있는 전국 198만8876가구 중 지역별로 소득 하위 70%에 해당하는 가구 비율을 분석한 결과, 서울과 경기, 울산 등 3곳이 70%에 미치지 못했다.

서울은 수혜가구 비율이 55.1∼57.8%(맞벌이 여부에 따른 편차)로 가장 적었고 경기는 62.3∼64.6%, 울산은 64.7∼67.1%였다. 전국 영·유아 가구 중 이 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48.5%로 절반 수준에 이른다. 광역시 중에는 광주의 수혜비율이 가장 높아 77.7∼80.8%가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다. 도 지역에서는 전남이 84.4∼86.7%, 강원이 81.1∼83.7%로 가장 높았다.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가구 비율이 지역별로 차이를 보이는 것은 양육수당 지급 기준이 전세금이나 집값이 높은 지역에 불리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소득 하위 70%로 확대되는 양육수당의 지급 기준은 4인 가족일 때 월 ‘소득 인정액’ 480만 원 미만이다.

소득 인정액은 월 급여뿐 아니라 보유 자산을 소득으로 환산한 금액을 더한 것으로 급여 외에 부동산, 금융자산, 자동차가 소득으로 환산된다. 집값 및 전세보증금을 소득으로 환산하면서 빼주는 기초공제액은 집값이 비싼 서울이나, 집값이 싼 광주나 모두 5400만 원으로 동일하다. 서울의 전세금이 웬만한 지방 대도시의 아파트 값과 비슷하거나 높은 점을 감안하면 서울에서는 ‘내 집’을 가진 영·유아 가정은 물론이고 전세 세입자 중 상당수도 양육수당을 받기 어렵다. 실제로 서울에서 3억 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 가구는 다른 재산이 없더라도 월 급여가 135만 원 미만일 때만, 2억5000만 원짜리 전세에 살고 있는 가구는 월 소득 200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에만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다.

○ 전세가 자가 소유 가구보다 불리


재산을 월 소득으로 환산할 때 전세 세입자가 자기 집을 가진 가구보다 불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가는 일반적으로 실거래 가격보다 낮은 시가표준액을 기준으로 환산하지만 전세 보증금은 실거래 가격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억 원짜리 전세는 월 203만 원의 소득이 있는 것으로 계산되지만 실거래 가격 2억 원, 시가표준액 1억5000만 원인 자기 집 보유자는 월 소득이 134만 원으로 계산된다.

자동차에 대한 가중치도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다. 2500cc 미만 자동차는 부동산과 같은 일반재산으로 분류해 월 1.39%의 소득환산율이 적용되지만 6년이 되지 않은 2500cc 이상 자동차는 중고차든, 장애인 차량이든 상관없이 소득환산율이 33.3%다.

이 기준으로는 2000cc 수입차(평가액 3000만 원)는 월 소득 42만 원으로 잡히지만, 2500cc 국산차(평가액 1000만 원)는 월 소득 333만 원으로 계산된다. 2500cc 이상 자동차를 갖고 있다면 소득이 적거나 중고차더라도 양육수당을 받을 확률이 크게 떨어진다.

전문가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선택적 복지’에서 ‘보편 복지’로 복지대상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충분한 사전 준비를 하지 않아 지역 간 수혜대상이 크게 엇갈리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한다. 최저 생활자인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선별하기 위해 2003년에 만든 기준을 약간 변형해 중산층에게까지 지급되는 양육수당 지급 기준 등으로 가져다 쓰면서 충분한 논의나 검토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자동차에 대한 소득 환산 문제 등은 올해 다시 검토할 예정”이라면서도 “같은 대도시 안에서 주거비 차이를 얼마나 반영해줘야 하느냐는 문제는 견해차가 클 수 있어 사회적인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박중현 기자 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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