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경북]70세 초등생들 “집에 가면 공부 안돼 도시락 들고 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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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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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교육청 ‘성인문해학교’ 학생들 나이 잊은 향학열

대구시교육청 성인문해학교에서 할머니들이 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8월까지 240시간 수업을 이수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대구시교육청 성인문해학교에서 할머니들이 국어 수업을 듣고 있다. 8월까지 240시간 수업을 이수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선생님! ‘연필을 이러버렸다’가 아니라 ‘연필을 잃어버렸다’가 맞죠. 조금 전에 배웠는데도 헷갈리네요.”

6일 오전 대구 중구 남산동 명덕초등학교 별관 1층. 겨울방학이어서 학생들은 없었지만 ‘할머니 학생들’의 국어 받아쓰기 수업은 한창이었다. 수업을 맡은 성인문해학교 교사 권민희 씨(41·여)는 “휴식 시간인데도 교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공부를 해 수업시간처럼 보인다”며 할머니들의 학구열을 칭찬했다.

성인문해학교는 대구시교육청이 한글을 배우지 못한 성인을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8월까지 주 3회 240시간 수업(국어, 수학, 영어, 한문, 과학)을 마치면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다. 지난해 11월 1차 시험에는 30명 모집에 77명이 응시해 47명이 불합격했을 정도로 관심이 높았다. “다시 기회를 달라”는 불합격자들의 요구가 많아 교육청은 12월 2차 시험을 거쳐 30명을 추가 선발했다. 이렇게 합격한 할머니 학생 60명의 평균 연령은 66세.

1차 합격자들은 지난해 11월 19일부터, 2차 합격자들은 같은 해 12월 19일부터 수업을 시작했다. 대구교육청은 이들이 8월 함께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을 수 있도록 2차 합격자들을 대상으로 오후 추가 수업을 실시할 계획이다.

2차 모집에서 합격한 김귀례 씨(64·서구 비산동)는 “대학까지 진학해 많은 사람 앞에서 강의를 해보고 싶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자기 이름도 쓰지 못해 은행 직원에게 대신 적어 달라고 했지만 이제 이름은 물론이고 간단한 영어까지 할 수 있다.

일흔을 넘긴 할머니들도 열정이 대단하다. 정순애 씨(77·동구 불로동)는 “보름 동안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지만 기억력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걱정”이라면서도 “중학교 과정까지 꼭 공부하고 싶다”며 의욕을 보였다.

박외순 씨(73·달서구 송현동)는 “학교를 다닌다는 게 하루하루 정말 즐겁다”면서 “학생이 되니 10년은 젊어진 것 같다”며 활짝 웃었다.

권 교사는 “집에 가면 공부 안 한다고 도시락을 가져와 공부하는 할머니가 대부분”이라며 “처음에는 어색해하던 할머니들의 표정까지 이젠 훨씬 밝아졌다”고 말했다.

대구교육청은 거리가 멀어 오기 어려운 달성군에 성인문해학교를 추가로 설치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노인호 기자 in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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