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판사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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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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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씨 법관임용 신청… 대법원장 “긍정적으로 검토”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2010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했던 최영 씨.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졸업할 예정인 최 씨가 법관임용 지원서를 제출해,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판사 탄생이 확실시된다. 동아일보DB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2010년 사법연수원에 입소했던 최영 씨. 우수한 성적으로 연수원을 졸업할 예정인 최 씨가 법관임용 지원서를 제출해,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판사 탄생이 확실시된다. 동아일보DB
시각장애인 최초로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에 입소했던 최영 씨(31·연수원 41기)가 연수원생 1000여 명 가운데 40위권의 성적을 받고 최근 법원에 법관 임용 지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최 씨의 법원 지망 소식을 보고받은 양승태 대법원장도 ‘긍정적이고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국내 최초 시각장애인 판사 탄생이 확실시된다.

○ ‘귀’로 법률 서적 읽기 훈련

최 씨는 고3 때인 1998년 점차 시력이 나빠지는 ‘망막색소변성증’ 진단을 받은 뒤 2005년경 책을 읽을 수 없는 3급 시각장애인이 됐다. 선천적으로 시각장애가 아니었던 터에 그는 점자를 읽지 못했고 사법시험 준비 과정에서도 모든 법률 서적을 음성 파일로 변환해 공부했다. ‘귀’로 책을 읽었던 셈이다. 수차례 도전 끝에 2008년 제50회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최 씨는 치열한 연수원에서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서는 음성 파일로 책 내용을 듣는 훈련을 더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사법연수원 등록을 1년 연기하고 이 훈련에 매진했다.

당시 사법연수원도 최 씨에 대한 배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 씨 입소를 앞두고 당시 사법연수원 교수진은 전체 회의를 열고 “최 씨에게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결론내리고 최 씨가 공부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필요한 조치를 취했다. 그 대신 시험과 평가는 비장애인과 똑같은 기준을 적용했다. 단 한 가지 특혜는 모든 문제를 음성으로 들은 뒤 풀어야 하는 최 씨에게 시험 시간을 조금 더 주었다는 점뿐이다.

○ 고민했던 판사의 길

이렇게 공부한 그는 사법시험과 연수원 시험 성적을 합산해 법관으로 임용되기에 충분한 40위권 초반 성적을 얻었다. 지난해 연수원 성적 기준으로 상위 140위권 후반이면 법관 지원이 가능했던 점으로 볼 때 최 씨는 수도권은 물론 서울 소재 법원에도 초임 발령이 가능할 것으로 법원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최 씨는 지난달 초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감사하다. 다만 아직 사법연수원 2년 과정이 끝난 게 아니라서 매우 조심스럽다”는 뜻을 밝히며 인터뷰를 사양하기도 했다.

최 씨는 판사와 헌법재판소 연구관 사이에서 고민해왔다. 연구관은 홀로 연구하는 분야지만 판사는 국민 앞에서 억울함을 풀어주어야 하는데 자신의 장애가 그 일에 ‘장애’가 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그는 우선 헌법재판소에서 연수원 실무수습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연수원에서 성공적으로 공부한 것에 자신감을 갖고 결국 판사의 길을 선택했다.

○ 장애인 배려하는 법원 문화 기대

법원 내부에서는 이미 최 씨가 사법연수원에서 기록을 검토하고 메모를 하고 이를 토대로 판결을 내리는 훈련을 성공적으로 해냈기 때문에 실무능력에서 우려할 게 없다는 판단이 나오고 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판사 임용에 힘을 실어주는 목소리가 나온다.

다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당사자들을 보지 못한 채 어떻게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릴 수 있는가. 오히려 국민이 재판받을 권리를 충실히 보장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서는 “전자 소송도 확대되고 소송문건 파일을 음성으로 변환하는 게 쉽기 때문에 시각장애 판사가 기록을 살피고 판결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법원 신청사건과 같이 재판 진행을 하지 않아도 되는 부서에 배치하는 방법도 있다”고 반박한다.

다만 법원도 장애인 판사 임용 시대가 현실화한 만큼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복잡한 법원의 통로나 장애인 출입 통로 부족 등의 문제는 보완하면 된다”며 “오히려 신화 속 정의의 여신은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 위해 아예 눈을 가려 선입견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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