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 병원비 76억 물어낼 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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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공단 “탈퇴후 민간병원 이용땐 의료보장 안돼… 환수검토”9년간 3만227명 해당… “대부분 소득 없는 노인들이라 난감”

6·25 전사자 보상금이 5000원이었던 사실이 밝혀져 국가유공자 홀대 논란이 빚어진 가운데 일부 생존 국가유공자에게 병의원 진료비 76억 원을 환수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26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국민은 의무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하지만 국가유공자와 가족은 관련법에 따라 건강보험과 국비지원 가운데 선택할 수 있다. 국비지원을 선택하면 전국 6곳의 보훈병원과 310곳의 위탁 병의원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병의원을 이용할 땐 건보공단 부담금까지 본인이 다 내야 한다.

2002년 국가유공자 137만2000명 중 82.5%인 113만2000명은 건강보험을 선택했고, 17.5%인 24만 명은 국비지원을 택했다. 그러나 국비지원을 택한 이들 가운데 3만227명은 여전히 국가 지정 병원이 아닌 민간 병원을 이용했고, 2002∼2010년 건보공단이 부담한 진료비가 76억 원으로 집계된 것이다. 건보공단이 환수하려고 나선다면 1인당 평균 25만1858원을 물어내야 한다.

최모 씨(63·서울 강동구)가 이 경우에 해당한다. 최 씨는 2006년 건강보험에서 탈퇴했지만 그 후로도 3년간 대학병원에서 말기콩팥병 치료를 받았다. 건보공단이 6178만 원에 달하는 진료비를 부담했다. 최 씨는 소득이 없는 상태다. 치매 치료를 받는 김모 씨(86·울산)도 2004∼2007년 일반 병원을 이용해 건보공단이 1000만 원을 부담했다. 김 씨는 2007년부터는 의료급여 수급권자가 됐다.

국가유공자들이 민간 병의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이용할 수 있는 병의원의 수가 적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보훈병원은 9월 문을 연 중앙보훈병원과 서울 부산 대구 광주 대전에 1곳씩 모두 6곳뿐이다. 위탁지정병원은 국공립 의료원을 비롯해 310곳이라지만 병의원이 전국에 3만 개가 넘는 것에 비하면 1%에 불과하다. 국비지원으로 무상진료를 받는 대신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진료비 환수 사실을 통보하기로 결정한 건보공단은 난감하다는 반응이다. 공단 관계자는 “건강보험 재정의 손실을 막고 다른 가입자와의 형평성을 고려해 환수하기는 해야 한다”면서도 “소득이 없는 고령 노인들이라 환수할 재산도 없고, 사정도 딱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환수 조치 대상 국가유공자 1만여 명(유가족 제외) 가운데 60대 이상은 80%에 달한다.

일부에서는 이런 상황을 낳은 원인부터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진료비 환수를 하기 전에 보훈병원의 진료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것. 유영옥 한국보훈학회장(경기대 국제관계학과 교수)은 “보훈병원의 수를 늘리고 질을 높여 국가유공자가 제대로 진료받을 수 있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문제다”라며 “미국의 보훈병원은 171곳으로, 대통령과 부통령이 이용할 정도로 환경이 좋다”고 말했다.

우경임 기자 wooha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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