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충격실화 ‘도가니’, 분노만 하다 끝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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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7일 1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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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실장님은 그런 짓을 할 때 마다 돈을 주셨어요. 천 원씩…"(유리)
"이 얘기를 다른 사람한테 하면 죽여 버릴 거야…"(연두)
"정말 그 사람들 벌 받게 해줄 수 있어요?"(민수)

영화 ‘도가니’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도가니’ . 사진제공=CJ 엔터테인먼트
영화 '도가니'는 무겁게 내려앉은 희뿌연 안개로 영화의 시작을 알린다. 그 무거움이 영화를 보는 내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들을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아픔을 가진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충격적인 고통이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동안 울컥거리는 가슴이 진정이 되질 않았다. 때때로 관객들의 '아~'하는 탄식이 울려 퍼지기도 했다.

할아버지뻘인 교장이 여자 아이들을 성폭행을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이를 벗어나려는 아이들을 무차별 구타한다. 또 다른 남자 교사는 남자 아이를 벌거벗겨 함께 목욕을 하고 그 아이의 몸을 더듬는 장면도 등장한다.

원작소설 공지영의 '도가니'를 영화화 한 것으로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2000년부터 5년간 학생들을 상대로 교장과 교사들이 성폭행과 학대를 저지른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도가니'는 9월 4주차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서 개봉 4일 만에 누적 관객 수가 90만에 도달하면서 이례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 충격실화 '청각장애인 성폭행' 끔찍한 진실과의 대면

인호(공유)는 무진 자애학원에 미술교사로 부임한다. 무겁게 가라앉은 학교 분위기와 아이들의 경계가 이상하다 생각하지만 학교 사람들 모두 크게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이어서 마음을 쉽게 못 연다는 것.

하지만 연두(김현수)가 생활지도 교사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하는 것을 보게 되면서 충격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지게 된다. 연두가 교장에게 성추행을 당했으며, 유리(정인서)라는 아이는 교장과 행정실장, 담임교사에게 수년 간 성폭행에 시달려온 것.

그리고 민수(백승환) 역시 교사에게 성폭행과 학대를 당해왔다. 소리 없는 아우성에 인호는 무진인권센터 간사 유진(정유미)과 함께 이에 대항하지만, 권력 앞에 이들은 더욱 무참히 짓밟히고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게 된다.

영화 속에는 권력 앞에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잘 그리고 있다. 전관예우(전직 판사 또는 검사라 변호사로 개업하여 처음 맡는 소송에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특혜) 등 사법당국과 경찰, 심지어 기독교인까지 가세한 막강한 힘의 장벽 앞에 법 앞에 평등하길 바라는 이들을 좌절의 도가니 속에 빠트린다.

영화 초반에 술이 덜 깬 유진이 시동도 걸지 않은 인호의 차를 들이박고는 인호의 탓으로 돌리며 설레발치는 설정은 어색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영화가 끝나갈 무렵 가해자가 피해자 인 냥 울어대는 영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대변하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정의VS무력함' 캐릭터의 변화

공유가 연기한 인호는 소설과 영화가 사뭇 다르다. 영화 속 인호가 정의를 위해 끝까지 목소리를 냈다면 소설 속 인호는 결국 마지막에 도망치고 만다.

이에 대해 공유는 언론 시사회에서 "소설 속 인호를 연기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영화가 계속 무겁기만 할 것 같고 관객들이 안 볼 것 같았다"면서 "진실 앞에 무기력하게 돌아섰던 소설 속 인호가 이해되지만 영화를 보신 분들이 '그래도 희망은 있어'라는 마음을 들게 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또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진실이 세상에 알려졌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공유는 이번 영화를 통해 연기 변신을 했다. 한층 깊어진 내면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정유미 역시 당차고 열정적인 인권센터 간사 서유진을 잘 표현해 냈다. 소설에서는 이혼하고 홀로 딸 둘을 키우는 인호의 대학 선배로 표현되고 있지만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캐릭터로 재탄생됐다.

인호의 과거 트라우마 라든지, 서유진의 캐릭터 변화라든지 사건이 밝혀지는 계기 등 소설과 다른 것이 사실이지만 주인공이 갖고 있는 사연을 삭제함으로서 중심 줄거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냈다.

연두, 유리, 민수 등을 연기한 아역 배우들의 연기는 감탄사가 나오지만, 잔인한 장면이 많은 탓에 정신적인 후유증도 걱정되는 것이 사실이다. 여자 아역배우 2명은 초등학교 5학년, 남자 아역배우는 중학교 1학년이다.

황동혁 감독은 "모든 장면은 부모님 입회하에 촬영됐으며 컷을 짧게 해서 아이들의 충격을 감소시켰다"라고 전했으나, 영화가 끝난 후에도 사후 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을 잔인하게 짓밟은 교장과 행정실장(쌍둥이 형제)과 담임교사 등의 악한 연기에 관객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담이지만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게 한 쌍둥이 역할의 장광은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인 슈렉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한국 성우계의 대들보 같은 인물이다. 그의 연기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 묻혀진 진실을 세상에 말하다

공지영은 "집행유예로 석방되는 그들의 가벼운 형량이 수화로 통역되는 순간 법정은 청각장애인들이 내는 알 수 없는 울부짖음으로 가득 찼다"라는 기사 한 줄을 읽고 진실을 말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황 감독 역시 "청각장애인들이 분노하는 법정 장면이야 말로 클라이맥스"라면서 실제 청각장애인들을 법정 방청객으로 출연시켰다고 밝혔다.

특히, 영화의 배경이 된 학교를 다녔던 이들이 촬영에 참여하면서 인상적인 장면이 만들어졌다. 극 중 상황에 진심으로 몰입한 이들이 내는 눈물과 울부짖음은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했다.

그리고 2011년 현재에도 들을 수 없어서 말할 수도 없었던 피해자들의 아픔은 계속되고 있다.

「2007년 10월 교장 항소심에서 2년 6개월. 집행유예 3년 선고. 1년 실형 후 출소하여 암으로 사망. 행정실 직원 혐의 인정되나 공소시효 지나서 실형 없이 2000만원 손해 배상. 평교사 징역 10개월 구형 하지만 공소권 만료로 실형 집행된 바 없음.」

이것이 가해자들에게 처해진 솜방망이 처벌이며 문제의 학교는 교명 세탁 시도로 재활 사업 대상을 언어 장애, 청각 장애에서 지적 장애로 넓히기 위해 정관 변경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당시 가해자들이 해당 학교에 버젓이 출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피해자들은 당시 사건을 규탄하고자 '소리 없는 아우성'을 외치고 있다. 이번 영화 '도가니'가 그들의 진실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동아닷컴 이슬비 기자 misty8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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