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초유 전력대란/전기 10% 끄세요]<중>매장서도 줄줄 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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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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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터 켠 매장… 그 옆선 에어컨 틀고 문 활짝… 기막힌 가을낮

전기 쓰고 외면받는 거리 미디어폴 20일 미디어폴이 설치된 서울 강남역 부근 도로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미디어폴의 화면에는 하루 종일 뉴스와 날씨 정보 등이 돌아가지만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19일 이후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서울 시내 매장 곳곳에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는 등 전력을 낭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전기 쓰고 외면받는 거리 미디어폴 20일 미디어폴이 설치된 서울 강남역 부근 도로를 시민들이 걷고 있다. 미디어폴의 화면에는 하루 종일 뉴스와 날씨 정보 등이 돌아가지만 이를 들여다보는 사람은 드물었다. 19일 이후 날씨가 선선해졌지만 서울 시내 매장 곳곳에서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로 에어컨을 틀어놓는 등 전력을 낭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온탕과 냉탕.

19일 오후 4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강남역 인근 상가의 모습이다. 이날 서울의 한낮 최고기온은 섭씨 18.2도에 머물렀다.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지자 강남역에서 교보문고로 향하는 거리의 한 화장품 매장에선 때 이른 히터가 등장했다. 하지만 근처 의류매장은 문을 활짝 열어놓은 채 에어컨을 틀어댔다.

낮 최고기온이 섭씨 31.3도까지 치솟으며 블랙아웃(대규모 동시 정전) 직전까지 갔던 15일과 달리 이날은 히터도, 에어컨도 필요 없는 날씨였다. 하지만 기자가 찾은 매장들은 여전히 냉·난방기를 틀어놓고 있었다. 전력 부족으로 나라가 마비될 뻔한 상황을 겪은 직후였지만 전기 절약은 생각도 안 하는 모습이었다.

길가에선 시민들에게 뉴스와 날씨, 교통정보 등을 제공하는 ‘미디어폴’이 환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미디어폴 옆을 지나던 왕태영 씨(28)는 “스마트폰으로 다 확인할 수 있는데 왜 이런 걸 설치했는지 모르겠다”며 “이런 게 바로 전력 낭비”라고 말했다.

○ 매장 곳곳 줄줄 새는 전기

같은 날 오후 서울 강남지역의 한 백화점에는 쌀쌀해진 날씨로 남방이나 카디건 등을 걸친 손님들이 찾아들었다. 이날 이 백화점의 실내온도는 1층 24.7도, 2층은 23.6도였다. 백화점 관계자는 “여름에는 의무적으로 실내온도를 26도 이상으로 맞춰야 하는데 그 기간이 지난달 27일로 끝나 온도를 조금 더 내렸다”며 “(조명등에서 나오는 열기 때문에) 백화점 전 층에서 에어컨을 가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지식경제부는 이번 정전 사태 직후 백화점을 비롯한 에너지 다소비 건물에 실내온도를 26도 이상으로 맞춰 달라고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이날 본보 취재팀은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전력 낭비 현장을 볼 수 있었다. 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설치된 자동화 코너는 밤늦은 시간에도 냉방 때문에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대형마트의 에스컬레이터는 사람이 없어도 돌았다.

강남지역에서 만난 미국인 제니퍼 라우 씨(21·여)는 “한국에 와서 밤에도 거리 곳곳에 환하게 불을 밝혀 놓은 것을 보고 가장 놀랐다”며 “정전 사태를 겪었다면 에너지 절약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무분별한 에너지 과소비 때문에 국내 전력사용량은 크게 늘었다. 에너지관리공단이 5월 발표한 ‘2011년 에너지절약 통계 핸드북’에 따르면 국내 상업·가정 부문 에너지 소비량은 2001년 10만4707GWh에서 2009년 16만9686GWh로 50% 이상 급증했다.

○ 소비자 의식 변화도 필요

주요 백화점과 대형마트처럼 고객이 많이 찾는 매장은 대표적인 에너지 다소비 건물로 꼽힌다. 지난해부터 에너지 다소비 건물을 대상으로 적정 냉방온도(섭씨 26도, 공항시설 등은 25도)를 유지하도록 한 ‘건물 냉방온도 제한조치’가 시행된 것을 계기로 유통업계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았다.

일부 업체는 형광등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 전구로 교체하고 건물 바깥에 열 차단 필름을 부착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 또 조명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태양광 발전을 동원하기도 했다.

여름철 실내온도를 26도 이상으로 1∼2도 높이면 전력 소비량을 10%가량 줄일 수 있다. 지난해 건물 냉방온도 제한조치가 끝난 뒤 지경부가 대상 건물 443곳을 전수 조사한 결과 98.6%(437곳)가 적정 냉방온도를 지켰다. 이들 건물의 평균 냉방온도는 26.6도였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매장을 찾는 소비자들의 높은 기대치 때문에 에너지 절약 노력이 벽에 부닥치는 일이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냉방온도 제한 조치를 시행하겠다는 발표가 나왔을 당시 누리꾼들은 ‘(26도면) 에어컨이 아니라 선풍기 수준이다’, ‘더워서 못 살겠다’는 등의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실내온도를 높인 뒤 탈의실마다 소형 선풍기를 갖다 두는 등 불편을 줄이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지만 고객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는다”며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거리의 작은 매장들조차 에어컨을 세게 틀어놓는 게 이해된다”고 털어놨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도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 조명 밝기를 조금만 낮추면 어둡다는 항의가 들어온다”고 말했다.

김인수 에너지관리공단 녹색성장정책실장은 “프랑스와 일본도 우리처럼 실내 냉방온도를 26도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불만을 나타내는 소비자는 거의 없다”며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 의식수준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송인광 기자 l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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