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대입에 유리? 수강신청 위해 아이디 도용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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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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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방과후학교 수강신청 ‘쟁탈전’

《부산의 한 고교 2학년 A 군(17). 그는 최근 오후 9시경 친구 4명과 PC방으로 향했다. 2학기 방과후학교 온라인 수강신청을 위해서다. 그는 새 학기 방과후학교 개설과목 중 5개를 듣기로 결정한 뒤 수강신청 전략을 세웠다. 1순위는 수강신청 시작 3초 만에 마감된다는 방과후학교 ‘1타 교사’(최고 인기교사)의 교육방송(EBS) 교재활용 영어수업. 다른 과목도 인기가 많아 빨리 마감되는 순서에 따라 수학, 국어, 한국지리, 경제 순으로 정했다. 방과후학교 수강신청 홈페이지 화면을 띄워놓고 수강신청과 동시에 행동할 방법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며 대기하던 A 군.

오후 10시가 되자 정해진 순서에 따라 번개같이 마우스를 클릭했다. 수강신청을 마치는 데는 5분을 넘기지 않았다. PC방에 모인 학생 사이에서는 수강신청 결과에 따라 탄식과 환호성이 교차했다. A 군은 “방과후학교 인기수업 신청에 성공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이번에도 국어과목 원하는 선생님의 수업은 일찍 마감돼 신청하지 못했다”면서 “청소년 출입이 금지된 오후 10시 이후에 컴퓨터 속도가 빠른 PC방에서 수강신청을 하려고 부모님과 함께 오는 학생도 있다. 지난 학기에는 내가 원하는 과목을 신청하지 못해 수강계획에 없던 인기 수학강의를 신청한 뒤 다른 친구와 맞교환하는 방법으로 수강신청을 마쳤다”고 말했다.》
최근 자기주도학습이 대입의 주요 평가요소가 되면서 인기 있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신청하기 위한 고교생 사이의 쟁탈전이 온라인에서 벌어진다.
최근 자기주도학습이 대입의 주요 평가요소가 되면서 인기 있는 방과후학교 수업을 신청하기 위한 고교생 사이의 쟁탈전이 온라인에서 벌어진다.
많은 고교에서는 요즘 방과후학교 온라인 수강신청을 위한 치열한 ‘쟁탈전’이 벌어진다. 온라인 수강신청으로 듣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 신청할 수 있는 학생의 수업선택권이 강화되면서 벌어지는 현상. 일괄적으로 학교에서 정해준 방과후학교 시간표에 대한 수강여부만 결정하던 과거와는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치열한 온라인 수강신청에는 최근 입시의 화두로 떠오른 ‘자기주도학습’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방과후학교 수업을 적극적으로 들은 학생은 학교생활기록부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 항목에 수강내용이 기록되고, 이는 교사가 작성하는 추천서나 학업계획서, 자기소개서에 반영될 수도 있기 때문.

조효완 전국진학지도협의회장(서울 은광여고 교사)은 “사교육의 도움 없이 학교교육과정에 참여해 성적을 향상시켰다는 점을 보여준다면 대입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의 한 여고 3학년 B 양(18)은 “방과후학교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들으면 학생부에 기록을 남기고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했다는 대입수시 추천서를 받을 수 있다”면서 “EBS 연계 강화로 수능이 쉬워지면서 수능 반영비율이 높은 정시에서 반수생, 재수생을 피해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이 늘면서 이런 현상이 더 심해졌다”고 말했다.

수강신청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다른 학생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도용해 로그인한 뒤 수강신청을 제때 할 수 없도록 비밀번호를 바꿔놓거나 이미 신청한 강의를 취소하기도 하는 ‘범죄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초기 설정된 학년, 반, 번호의 숫자를 조합해 아이디를 만들고 여기에 초기 비밀번호로 ‘0000’ ‘9999’ 같은 간단한 숫자를 설정한 학교에서 적잖게 일어나는 일이다.

최근 대구의 한 고교에서도 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자신이 듣고 싶은 방과후학교 수업을 신청하지 못한 학생이 다른 학생의 아이디로 로그인한 뒤 이미 신청해놓은 수업을 취소해 버린 것. 그 뒤 곧바로 자신의 아이디로 다시 로그인해 해당 수업을 수강 신청한 것이다. 다음 날 수강신청이 취소된 사실을 알게 된 피해학생이 교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학교는 사용된 컴퓨터의 인터넷주소(IP)를 추적한 끝에 해당 학생을 적발해냈다.

이 학교 C 군(17)은 “적발된 학생은 한 명이 아닌 5명 정도였고 대부분 이른바 ‘문제아’가 아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어서 충격이 컸다”고 말했다.

학생의 수업선택권이 강화되면서 일선 교사의 고민도 깊어졌다. 학생들 사이에서 잘 가르친다고 알려진 인기교사와 비인기교사의 수강신청 선호도가 확연히 갈리기 때문. 같은 교과목 수업이 서너개 개설되면 이 중 한두 개 수업은 폐강되는 경우가 적잖다.

서울의 한 고교 3학년 담임인 D 교사는 “겉으로 티는 못 내지만 수강신청 결과를 보고 신청학생이 적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신청학생이 적어서 폐강이라도 되면 자존심이 상한다”면서 “교사 사이에서도 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교사가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공개연구수업을 할 때 자세히 관찰한다”고 말했다.

반면 전북의 한 고교에서는 방과후학교 온라인 수강신청 방식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하는 일도 일어났다. 온라인 수강신청이 특정 교사에 대한 학생들의 ‘인기투표’ 성격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면서 반대의견을 밝힌 것. 이 학교 1학년 E 양(16)은 “학생들의 서명 결과를 교장선생님께 제출하자 2학기 방과후학교 수강신청이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수강여부만 확인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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