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밭이 산사태 숨은 주범?… 광양市 “300곳중 절반이 비탈 경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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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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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폭우에 무너져 내린 전남 광양시 진상면 산자락의 고사리밭. 광양시 제공
8일 폭우에 무너져 내린 전남 광양시 진상면 산자락의 고사리밭. 광양시 제공
최근 집중 호우로 백운산 자락인 전남 광양시 진상면 어치리 지계마을 주변 산은 수십 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 마을 김모 이장(53)은 “7일 저녁 시간당 100mm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산사태로 마을 전체가 고립돼 밤새 불안에 떨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주민 강모 씨(63)는 집 뒤 야산에서 토사가 유실되자 이를 확인하러 나갔다가 부상을 입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광양시는 진상면과 다압면 300여 지점의 경사지가 산사태로 무너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산사태 절반은 인위적 개발 탓”

광양지역은 7일 진상면의 비공식 측정 결과 시간당 최고 124mm(1일 강우량 275mm)의 폭우가 쏟아졌다. 하지만 이 지역에서 대량 산사태가 발생한 데에는 또 다른 원인이 있었다. 산자락에 가득했던 밤나무를 베어내고 고사리 등 대체작목을 심었던 것.

광양시는 8일 “산사태가 발생한 300여 곳 가운데 절반가량은 밤나무 대신 고소득 작목인 고사리나 감나무 매화나무를 심는 등 인위적으로 작목을 바꾸거나 임도(林道)를 개설하고 농약 과다 살포로 잡초가 모두 사라진 곳”이라고 밝혔다. 광양시는 또 “9일 정식 조사가 시작되면 피해 규모는 더욱 늘 것”이라고 덧붙였다.

광양지역은 2008년부터 소득이 낮고 병해충이 많은 밤나무를 베고 58개 고소득 대체작목을 심기 시작했다. 밤나무 벌목 면적은 2008년 199.6ha(약 60만 평), 2010년 146.6ha(약 44만 평)에 달한다. 밤나무를 베어낸 산에는 고사리 감나무 매화나무 등 각종 대체작목을 심었다. 고사리 재배 면적은 2008년 106ha(약 32만 평), 2009년 254ha(약 76만 평), 2010년 373ha(약 112만 평)로 크게 늘었다. 이번에 산사태를 당한 농민 A 씨의 경우 3년 전 경사 20도 정도의 산자락 6000여 m²(약 2000평)에서 밤나무를 베어낸 후 고사리를 심었다. 나무를 베고 대체작물을 심다 보니 폭우에 산자락이 견디지 못한 것이다.

○ 고령화, 농약 과다 살포도 이유

전문가들은 농촌이 고령화되면서 농기계 운반을 위한 임도가 산에 많이 설치되고 농약 사용이 늘어난 것도 또 다른 이유로 보고 있다. 광양지역은 기존에 심어진 밤나무가 병해충으로 몸살을 앓자 농약을 과다 살포하면서 과수원은 풀 한 포기 없는 산으로 변했다.

앞서 지난달 9일에는 광양 지역 경사지 170곳이 무너져 내렸다. 이 중 산사태가 난 60여 곳은 고사리나 감나무 매화나무를 심은 곳이다. 24곳은 농기계 통로 주변에서 일어났다.

류지협 광양한려대 토목환경공학과 교수는 “최근 발생한 전남 순천시 죽동마을 산사태도 산에 조성된 매화나무 밭이나 묘지 등 인위적 개발이 원인이었다”고 말했다.

김양운 광양시 산림자원과장은 “농민들이 고사리 재배 등을 위해 산을 깎고 나무를 베면서 산사태에 취약해진 것 같다”며 “정확한 산사태 원인을 규명한 뒤 경사지가 가파른 경우 고사리 등 대체작물 재배를 제한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광양=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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