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통영의 딸’ 보도… 가족 찾는 불씨 되살렸어요”

  • Array
  • 입력 2011년 8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숙자 씨 남편 오길남 박사 “인권위서 돕겠다 연락 와”

‘통영의 딸’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본보 기사를 가리키며 애달픈 사연을 털어 놓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통영의 딸’ 신숙자 씨의 남편 오길남 박사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본보 기사를 가리키며 애달픈 사연을 털어 놓고 있다.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감사합니다. 동아일보 기사가 가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살려줬습니다.”

3일 오전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만난 오길남 박사(69)는 연방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동아일보는 북한 요덕수용소에서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 오 박사의 아내 신숙자 씨(69)와 딸 혜원(35) 규원 씨(33)의 구출 서명 운동을 벌이는 경남 통영시민들의 사연을 보도했다. 오 박사는 “20여 년 동안 아내와 딸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모든 길이 막혀 있었다”며 “이번 기사로 사람들의 관심이 모이면 아내와 딸이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 도중에는 주변의 격려와 방송국의 섭외 요청 전화가 계속 걸려왔다. 김태훈 국가인권위원회 북한인권특별위원회 위원장은 기사를 보고 가장 먼저 오 박사에게 연락을 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정권에 의해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연을 알게 됐다”며 “적극적으로 오 박사 가족의 생환을 돕겠다”고 말했다.

인권위의 연락을 받는 순간 오 박사는 만감이 교차했다. 1986년 덴마크에서 탈출한 뒤 오 박사는 북에 남겨진 가족의 구명 운동에 힘을 썼다. 1980년대 말 독일에 머물며 음악가 윤이상 씨에게 가족의 송환을 부탁했지만 돌아온 것은 회유와 질책뿐이었다. 1992년 오 박사가 한국에 온 뒤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 박사가 1993년 ‘김일성 주석, 내 아내와 딸을 돌려주오’라는 책도 썼지만 반향은 없었다.

그는 단체명에 ‘인권’이 들어간 정부, 시민, 종교 단체를 모두 찾아갔지만 문전박대당했다. 오 박사는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이 북한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며 “남북 화해 무드 속에 진실을 호소하는 내 목소리가 묻혔다”고 말했다. 또 그는 “김영삼 정부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비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와 아내와 딸을 교환하려는 은밀한 시도가 있었다”며 “하지만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정부 고위직 인사의 방해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오 박사는 서울대 독어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였다. 독일에서 민주화 운동을 할 정도로 정의감에 넘친 그였지만 북한은 그를 대남공작원으로 유인해 납치했다.

“아내와 딸이 짐승처럼이라도 살아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너무 보고 싶습니다.”

구출 서명 운동에 동참하려면 다음 카페 ‘통영의 딸 신숙자 모녀 구출’(cafe.daum.net/daughteroftongyeong)에서 서명용지를 내려받으면 된다. 문의는 통영현대교회 방수열 담임목사 010-6299-9331, soosin153@hanmail.net.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