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질로 토종벌 대량 폐사, 근심에 잠긴 과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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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8일 14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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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벌. 동아일보DB
토종벌. 동아일보DB
"꽃은 만발했는데 토종벌이 없어 올해 때깔 좋은 복숭아, 단감을 수확할 수 있을지…"

과수 농가들이 지난해부터 꿀벌의 구제역이라 불리는 낭충봉아부패병이 돌면서 토종벌이 대량 폐사하자 근심에 잠겼다. 한봉(韓蜂) 주산지인 전북 남원시와 전남 구례군, 경남 함양군 등 지리산권역 7개 시·군 과수 농가들은 걱정이 더 크다. 토종벌이 대신 양봉(養蜂)이나 수정벌이 자리했지만 우려가 앞선다. 과수원들은 토종벌 폐사로 착과율이 10~30% 정도 감소하는 2차 피해가 현실화되자 꽃가루 수집·전파 전쟁을 벌이고 있다.

● 토종벌 폐사 2차 피해 현실로

17일 전남 순천시 월등면 송천리 복숭아 집하장. 탑프루트 시범단지 농민 20여명이 바구니에 분홍색 복숭아꽃을 담아 모여들었다. 김수종 씨(50)는 "지난해 토종벌이 죽고 냉해까지 겹쳐 기형과일이 많이 나오고 생산량도 최대 40%줄어 올해 처음으로 인공수분을 하고 있다"며 "중국산 꽃가루조차 가격이 서너 배 올라 꽃가루를 제조키로 했다"고 호소했다.

월등면 농가 130여 곳은 복숭아 20여 품종을 100㏊(약 30만평)을 재배하고 있다. 절반을 차지하는 천중도 백도 등 10개 품종은 꽃가루가 없어 벌들이 와야 한다. 농민들은 최근 양봉 벌통 50개를 돈을 주고 빌렸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수(手) 작업에 나서고 있다.

전국 복숭아 재배면적은 1만 3000㏊(약 4000만평)이다. 그동안 시설하우스 복숭아는 인공수분이 이뤄졌지만 노지재배는 수작업(인공수분)이 드물었다. 김혜령 순천시 농업기술센터 과수담당은 "지난해 토종벌 폐사와 냉해가 겹쳐 꽃가루가 없는 복숭아 품종은 과수에 열매가 열리는 비율인 착과율이 30% 정도 감소한 것 같다"고 추정했다.

순천시는 과일 생산량보다 모양이나 맛이 좋은 고품질 과일 생산에 영향을 주는 착과율이 감소하자 인공수분 면적을 배, 단감, 복숭아, 참다래 등 4개 작목 116㏊로 확대키로 했다. 전남 나주시 배 밭이나 전남 광양 매실 밭에서는 토종벌 폐사로 착과율이 10~20%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꽃가루 옮기는 인공수분 비상

전남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 매실이나 단감 농가 90곳도 우려가 가득했다. 30년째 매실농사를 짓고 있는 김병식 씨(69)는 "토종벌이 폐사하자 양봉 벌통 4개를 구입했으나 열매가 제대로 맺힐지 걱정"이라고 하소연했다. 양봉은 꽃가루가 많고 땅바닥에 붙은 꽃을 찾아다니는 편식성이 있는 반면 토종벌은 편식성이 없고 높은 곳에 맺히는 감꽃까지 날아가 꿀이나 꽃가루를 옮긴다는 것. 지리산은 그동안 토종벌만이 꿀을 모으고 꽃가루를 전파하던 지역이다. 손점암 (사)한국토봉협회장은 "토종벌은 꽃을 가리지 않고 날아가 꽃가루를 옮기는 왕성한 활동을 한다"며 "토종벌 폐사가 생태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전북 남원지역 사과농가 110곳이 참여하는 지리산 반달곰 사과연합회도 토종벌을 대신할 인공수분 매개체 확보를 걱정하고 있다. 정진수 씨(56)는 "조만간 양봉을 통 당 6만원에 빌려 나눠줄 계획이지만 뭔가 시원치 않다"고 걱정했다.

박준규 청도복숭아명품화연구회장(40)은 "지난해 토종벌이 많이 폐사한데다 곤충수도 줄어 복숭아 농가 중 20~30%가 인공수분을 못했는데 올해도 악순환이 재현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 구멍 뚫린 방역 수년간 괴질 지속

농림수산식품부나 한국토봉협회, 전문가들은 토종벌이 괴질에 폐사·감염된 비율이나 생태계 영향에 대해 분석을 각자 달리한다. 정부는 지난해 10월경 전국 토봉농가 1만 7000곳 가운데 1만 2000곳(68.2%)에서 키우는 토종벌 41만 3000통 중 31만 7000통(76.7%)이 피해를 입었다고 분석한다. 한국토봉협회는 토종벌 95%이상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고 있다.

이들 모두 괴질이 앞으로 2~3년간은 지속될 것이라는 것에는 공감한다. 강승원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연구관은 "낭충봉아부패병 예방약으로 이산화염소나 티몰이 있지만 치료약은 없다"고 말했다. 토종벌 전멸위기가 커지자 지난해 통 당 5만원하던 토종벌 가격이 올해는 80만원까지 치솟았다. 또 구례지역 한봉 농가들은 3개월 동안 강원도나 제주도 등 전국을 돌며 괴질에 걸리지 않은 토종벌을 모아 전남 고흥 등 청정지역에서 번식시키고 있다. 이같은 토종벌 대피·번식공간은 전국에 38곳이 있다.

올 봄 전국적으로 한봉 12곳·양봉 2곳 등 농가 14곳에서 낭충봉아부패병이 발생해 주의보가 내려졌다. 날씨가 따듯해져 다시 확산될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농가들은 신고를 기피하고 있다. 이 질병이 가축전염병으로 지정됐으나 제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아 신고를 꺼려 방역에도 구멍이 뚫린 셈이다. 38년째 벌을 키우고 있는 이태식 씨(61·충남 청양군)는 "정부가 실질적인 피해 지원대책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최성진 기자 choi@donga.com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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