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국 전문가 기고/존 페리]<3>대지진 이후 日의 미래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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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절제 보여준 民… 리더십 잃은 官… ‘순종하는 사회’ 日에 변화 바람 불 수도

존 페리
3월 11일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최악의 재난을 경험했다. 현재로는 어느 누구도 일본이 경험하고 있는 지진, 지진해일(쓰나미), 방사성 물질 누출 피해의 ‘3중 비극’이 가져올 고통의 크기를 정확히 가늠하지 못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원자력 부분은 가장 심각한 것으로 현재 진행형이고 우리 모두에게 잠재적 영향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세계 최초로 핵공격을 당했던 일본이 평화적으로 추진해 온 원자력 에너지로 인해 또다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모진 아이러니다.

일본인들은 자제력과 통제력을 발휘하면서 자치 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최악의 재난에서 용기를 잃지 않는 모습과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을 보이려는 절제된 행동은 인상적이다. 엄청난 고통 속에서 발휘되고 있는 일본의 금욕주의는 그 어느 때보다 빛이 났다.

하지만 정부 당국은 비틀거리는 모습이다. 원자력발전소의 운영과 안전장치 마련에 책임이 있는 도쿄전력은 일반 국민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부에도 정보를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 역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고 불안감에 휩싸인 국민들을 안심시킬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날려 버렸다.

3월 23일 싱가포르에 가기 위해 경유했던 도쿄(東京) 나리타공항에서는 불과 12일 전에 발생했던 재난의 후유증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 전기와 식수를 아끼자는 작은 안내표지가 눈에 띄었지만 생필품 부족도 느낄 수 없었고 기본적인 편의시설도 불편하지 않았다.

일본은 20세기에 두 차례의 대지진 사태를 겪었다. 첫 번째는 10만 명 이상의 인명피해와 함께 도쿄와 요코하마(橫濱)를 폐허로 만들었던 1923년의 간토(關東) 대지진이었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의 중심에서 발생했던 당시 지진 사태에서 일본 국민들은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은 희생양을 찾았고 조선인을 포함한 일부 소수민족을 방화범으로 몰아갔다는 기록도 있다. 대지진은 일본 경제를 흔들었지만 그 속에서도 일본은 지진에 대비한 건축기술을 발전시켰고 새로운 도시 개발에 나설 수 있었다.

1995년 한신(阪神) 대지진 역시 인구가 밀집한 산업지역에서 발생했고 가장 중요한 항구 중 하나인 고베(神戶)를 완전히 파괴시켰다. 자연스럽게 세계 10대 물류항구였던 고베는 그 지위를 한국의 부산에 넘겨줬다.

국제경제 특성상 일본이 겪고 있는 3중 재난은 국제경제의 공급과 물류에서 일시적 차질을 가져올 수도 있다. 치열한 국제 경쟁 속에서 일본 산업계는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지진과 쓰나미 사태는 경제의 중심지역에서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다. 그럼에도 일본의 복구에는 엄청난 비용이 들 것이고 정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복구비용이 아니라 자신감의 회복이다. 일본이 이번 초유의 대재난 사태를 맞아 보여준 용기와 강인한 회복력, 그리고 도덕적인 승리는 일본의 혼을 다시 점화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번 사태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공권력에 대한 국민의 회의감은 ‘순종의 사회’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존 페리  
■ 존 페리

미국 터프스대 플레처스쿨 교수(국제관계학)
예일대 석사(중국학) 하버드대 박사(사학)
저서: ‘독수리 날개의 아래에서: 점령국 일본의 미국인’(1984년)‘서양에 맞서다: 미국인과 태평양 개방’(1995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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